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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Apr 27. 2024

일기와 편지를 사랑했던 날들

디지털 시대의 손글씨 2

1.


아주 다행스럽게, 중고등학생 시절에 쓴 일기장이 아직도 남아 있다. 

나이가 들어서는 일기를 쓰지 않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청소년 시절에 쓴 일기장 만으로도 나는 수많은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푸른 날들이었고 최고의 시기였다.


학교 공부 때문에 늘 마음이 쫓기기는 했지만, 그때는 어쩌면 바로 그것만이 어깨에 짊어진 가장 무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학교 공부는 사라졌지만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짐이 어깨 위로 새롭게 하나씩 늘어났고 몸과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무소유'에 관한 철학을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어깨 위에 짊어진 짐이 줄어드는 것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개념이 아닐까. 소유는 결국 자신의 어깨 위에 짐을 지는 것. 하여간 그때는 학교 공부라는 짐과 우정과 사랑에 관한 짐이 삶의 거의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나이가 든 후에는 대체로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짐으로 여겨지게 되었지만, 그때는 먹고사는 일에 관한 고민이 단지 부모님의 역할이라고 여겼으므로, 학비와 용돈만 모자라지 않다면 내 인생에서 경제적 문제는 완전히 부차적인 일이었다. 하긴 우리의  학창 시절에 '부자'는 별로 없었다. 전국민적으로 거의 모두 가난했으므로 돈이 없어서 고생한 친구들은 많았다. 의무교육제도가 실시되었을 때조차 등록금과 육성회비를 내기 어려운 아이들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사실 나라가 가난해서 사람들이 거의 다 그렇게 살았다. 부유한 부모를 둔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풍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으므로 학생들끼리 서로 경제 수준이 비교되거나 거기에 기초해서 삶이 평가되는 일은 없었다. 부의 불평등으로 초래되는 불행과 가난의 평준화로 생기는 불행 중 어떤 것이 더 불행할까.



2.


일기장에는 매우 낯익은, 나의 못난 글씨들이 있다.

나는 정말 악필이었다. 일기는 그나마 밤에 여유를 가지고 비교적 성의 있게 쓴 것이라 나은 편이다. 일기를 쓸 때 나는 가능하면 마음을 안정시키고 뭐든 말해도 좋은 친구를 대하듯 꽤 성의 있게 글을 썼으니까. 왜냐하면 일기장에는 나의 비밀들을 적어야 하니까.


그러나 특히 학교에서 급하게 서둘러 쓰면 그야말로 개발새발 글씨였다. 시간이 많아서 정성을 들여서 쓰면 겨우 봐줄 만은 하지만 글씨들이 그냥 네모나 보여서 마치 어린아이가 쓴 글씨와 같았다. 초등학교 때 붓글씨를 배우고 그런 글씨체로 글씨를 쓰고자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쓰다 보면 금세 피곤해졌고 글씨가 풀어졌다.



그래서 변형된 것이 나만의 악필체였다. 나는 글씨를 쓸 때 지나치게 힘을 주어서 너무 꽉 눌러쓰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글씨를 오래 쓰기도 힘들다. 내 글씨는 전혀 부드럽지 않고 경직되어 보였다. (신기한 것은 나의 형이나 누나들은 글씨를 잘 쓴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나의 악필을 유전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어쩌면 개체적 '돌연변이'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일기 쓰기에 열심이었다는 것이다. 글씨는 잘 못 써도 쓰기의 중요성을 어릴 때부터 배운 결과였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방학숙제 식으로 쓴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이미 어릴 때 모두 버렸다. 중학생이 된 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쓴 일기는 조금 더 읽어줄 만한 기록이었다. 그런데도 일기 내용에 자못 스스로 엄격했던 나는 학교공부 계획과 걱정에 관한 내용만 가득했던, 그러나 유치해 보였던 중1, 중2 때의 일기장을 모두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조금 아깝기는 하다.


그때까지 쓴 일기는 주로 학교공부에 관한 걱정과 계획에다 친구들 이야기를 약간 섞은 내용이다.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이나 일상에 관한 묘사, 학교와 거리와 교회에 관한 설명, 그런 것들에 관한 나의 시각과 경험과 감정과 평가, 생활계획과 실천과정과 반성과 평가, 육체적 정신적 성장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등을 담은 내용은 많이 모자랐다는 말이다. 그래서 결국 남은 것은 중3 때부터의 일기장이다.




지금 와서 다시 읽어 보면, 나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일기장은 주로 고등학생 시절의 일기장이다. 한 인간으로 성장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고민과 감정들이 거기에 담겨 있다. 일기장에는 여전히 학교 공부에 관한 내용이 많기는 하지만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무척 많아졌다. 군데군데 기독교 신앙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들이나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초본이 섞여 있다.


나는 편지를 쓸 때 일기장에 먼저 쓴 후 그것을 기초로 해서 깨끗한 편지지에 옮겨 쓰거나 새로 적었다. 그 덕에 초본들이 살아남았다.


대학에 들어간 후 나의 일기 쓰기는 불행한 시대를 맞았다.

그 과정을 생각하면 몹시 슬프다. 대학 들어간 후 일기장에는 갑자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내용이 늘어났었다. 1학년 봄학기 초부터 느닷없이 시작하게 된 대학 서클과 사회참여 의식에서 비롯된 내용들이다. 그러나 하필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을 때 학생운동 문제로 경찰서로 끌려가서 며칠간 잡혀 있었다. 거기서 나온 후에는 겁이 나서 대학에 들어와서 썼던 일기장을 모두 불태웠다.


그해 8월, 해가 쨍쨍 내리쬐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홀로 마당에 나와서 비통한 감정에 젖어 가슴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일기장을 한 장씩 찢어가며 불태웠던 것이. 그 후로는 언제나 '자기검열' 과정을 거쳐 일기를 써야 했고 경찰이나 형사가 봐도 괜찮을 내용이나 쓰다 말았다.


일기장이, 거기에 적힌 나의 글이, 글에 담긴 나의 생각과 사상이, 나의 일생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실은 아직은 사회와 정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대학에서 받고 있었던 장학금까지 혹시라도 잘릴까 걱정했다. 등록금을 어떻게 내라고!


일기장에는 친구들이나 선배들의 이름과 그들의 특징과 언행이나 모임장소 등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나는 그것이 혹시라도 어떤 불행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사실은 겨우 1학년인 나의 집까지 '압수-수색'하는 일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린 나는 불안에 떨었다!) 일기장이라는 한 인간의 작은 프라이버시마저 국가권력 앞에서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던 시대였다. 또는 나는 그렇게 느꼈다.


미국에 와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일기 쓰기가 진행됐다. 그러나 거기에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썼던 정다운 내용이 거의 없다. 주로 사회과학과 역사와 철학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지금 와서는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다시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그리고 더욱 애처롭게도, 20대가 끝나기도 전에 나의 일기의 시대는 종말을 맞았다.



3.


다행히 어릴 때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 여러 통이 일기장에 남아 있다. 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글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내가 편지를 통해서 마음과 생각을 전하려고 애썼던 것에 비해 친구들은 나만큼 편지를 쓰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남자 친구들은 낯간지럽다고 편지 교환을 기피했고, 여학생들은 남학생에게 말로나 글로나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경향이 심해서 그랬던 듯하다. 물론 나에게 굳이 편지를 보낼 정도로 관심이 가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여학생들끼리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남학생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적어도 그 시대에는 확실히 흔한 일이 아니었다. 글을 써서 전달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랬을 수도 있고 자기 마음을 감추려는 교육 효과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가부장주의적 남성우위 시대의 문화적 관습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어쩌면 글솜씨에서 비롯된 현상이었을 수도 있다. 글을 잘 쓰는 것, 편지처럼 마음이나 감정을 글자로 표시하는 것은 확실히 어떤 기술이나 재능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당시 내 친구들의 글솜씨가 나보다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체로 똑똑한 친구들이었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습관과 노력에 의해서 발전된다. 글쓰기는 다른 예술처럼 원래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겠지만, 길게 보면 한 번에 잘 쓰는 사람이 되기는 어렵고 오랜 기간 연습하는 과정에서 점차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지만, 어릴 때 조금만 노력하면 국어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하고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한다. 좋은 글쓰기를 위해 책에서 약간의 단어들과 문장 작법 기술을 모방하고, 글의 구성에도 조금 더 정성을 기울여서 쓰기만 해도 그 시절에는 다른 학생들과 사뭇 다른 품위의 글이 나온다. 그것은 모두 어린 시절의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


글쓰기에 있어서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려는 지속적인 열정과 노력이며,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글로 표현하려는 습관이다. 아무튼 일기와 편지는 우리가 학창 시절에 진정으로 글쓰기를 연습할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4.


요즘 학생들은 일기와 편지를 얼마나 쓰고 있을까.

혹시 일기나 편지를 쓴다 해도 그들은 애써 편지지를 구해서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핸드폰에서 즉흥적인 대화가 이뤄지고 긴 글을 기피하는 시대.

있던 단어들마저 짧게 줄이고 잘라서 표현하는 시대.

더 이상 손글씨를 쓸 기회가 사라지는 시대.

더 이상 정다운 손글씨를 볼 기회가 사라지는 시대.


우리는 어느덧 연필과 펜과 볼펜을 내려놓고 거의 언제나 휴대전화와 컴퓨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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