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락 Stelarc
인류의 미래
유한한 인체를 극복하라. 영생을 위한 믿음과 그를 향한 인간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과학 기술 덕에 인간의 기대 수명은 나날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이에 힘입어 신체에 대한 투자 열풍 역시 함께 거세지는 중이니. 이처럼 인간의 염원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들은 앞으로도 영영 끝나지 않을 과정이자 과제일지 모른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미래형 신체. 어느 영화에서처럼, 나를 꼭 빼닮은 클론들로부터 매년 장기와 피부를 이식받는 모습은 더 이상 환상이 아니게 될 것이다. 어쩌면 기계 장치를 이용할 수도 있다. 뇌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기계화된다는 흔해빠진 스토리처럼 말이다. 이럴수록 우리가 '본디' 소유한 몸의 개념은 무용해지겠지만... 그래서?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인간의 욕망 앞에선 어떠한 행위도 금세 합리화 되어버리는 이 시대에.
포스트 휴먼, 인간 이후의 인간
호주 출신의 아티스트 스텔락(Stelarc)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오랜 갈망을 자극한다. 그는 '신체는 고루하다'라는 선언 아래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한 신선하면서도 생소한 작품들을 관객 앞에 들이민다. 외과적 수술은 물론 기계장치, 인공 피부와 생체 이식까지. 언뜻 들으면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의 이 행위들은 모두 불완전한 신체에 대한 방안으로 시도된 엄연한 작품들이다. 매번 기이한 모습으로 관객 앞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그는 세 개의 귀를 갖고 있다. 원래의 귀 두 짝,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Ear on Arm>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것이다. 자신의 팔에 직접 인공 배양된 귀를 이식한 뒤 성장시킨 그는 이 새로운 귀에 마이크와 와이파이 칩을 이식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모두의 귀'로 만들었다. 인터넷 포털에 접속하면 언제든지 누구나 그 귀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한 것.
이 엄청난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팔에 귀를 이식해 줄 외과 의사를 찾는 것'이었다. 무려 1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고, 마침내 주인 없는 귀가 그의 팔에 자리를 잡았다. 6개월 후 생체 조직은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팔과 이어진 혈관들도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애써 장착한 전자 장치는 감염 때문에 후에 제거되었다고 한다.
그의 기괴한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혀를 따라 이동하는 나노 로봇과 위 속에 기계 조작품을 설치하는 등 기상천외한 작품들로 자신의 예술혼을 세상에 피력했다. 하지만 작업의 주제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순했다. '우리의 신체는 불완전하다'. 그는 신체의 한계를 탐색함과 동시에 이를 확장하며 수정해 가는 실험을 반복했다. 공기가 없으면 몇 분도 못 버티고, 음식과 물로 에너지를 채우고, 체액의 양과 체온 변화의 민감한 신체는 스텔락에겐 구식이나 다름없었다.
기술, 새로운 세계의 신탁
과학 기술의 발달을 통해 인간은 많은 혜택을 얻었다. 삶의 질의 향상은 물론 경험의 수준도 이전과는 차원이 달라졌으니까. 그리고 우린 점점 그런 기술에 적응해 갔다.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건 물론 일상의 적용하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우리의 몸은 여전히 생물학적인 영역 안에 있지만, 주변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스텔락은 이러한 가능성의 새 장을 열었다. 그는 로봇과 자신의 몸을 연결시켜 인터넷으로 조작하게 만드는 신기한 퍼포먼스도 치러냈다. 인터넷을 하나의 신경망처럼 활용하여,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신체를 웹 상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사회 시스템과 기술, 그리고 문화 덕분이다'라는 작가의 신념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었다.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마음과 영혼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기술의 발전은 그에겐 새로운 세계의 신탁과도 같았다. 그는 인간의 잠재력보단 기술의 가능성에 베팅한 것이다. 기술에 의지하면 모든 게 가능했다. 진리나 다름없는 출생과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 인공 자궁과 피부 세포로 만들어 낸 정자, 3D 프린팅으로 만들어낸 인공 장기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유성 생식과 유한한 신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간단히 무너뜨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이러한 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무한한 자유를 줄 거라 믿는다. 이 자유는 결국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인식을 바꿔버릴 것이다. 어쩌면 근본 중의 근본인, 인간의 정의까지 말이다. 과연 신체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은 어떤 의미와 가능성을 품게 될까? 스텔락의 작품들은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까지 뒤흔들어 놓을 만큼의 강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스텔락은 그가 단순히 영생에 미친 탐욕스러운 괴짜로 비치길 원치 않는다. 그는 개인이 완전한 자유 안에서 자신의 몸을 재설계하고, 이를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에 대해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는 그보다 더 밀착된 인간의 욕망과 현실을 직시한다. 기술의 발전과 번영은 막을 수 없는 것인데, 그럴 바엔 차라리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좋지 않느냐며 말이다. 우리는 결국 그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필자: 주단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