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은 이별부터 생각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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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별은 항상 잊어도 그만, 이란 마음으로 실행된다. 대신 잊어서 아플 거 같으면 죽어도 놓지 않는다. 매번 거창하다고 여겼지만 돌이켜 보면 이별은 그토록 시시할 수가 없다. 하루짜리 치정극, 혹은 다큐다. 오히려 이별까지 도달하는 여정들이 거창하다면 거창할 수 있겠다.
내가 했던 이별 멘트 중에 최악은 다시 돌아올게, 였던 것 같다. 당시엔 상대와 한시도 붙어있고 싶지 않았고, 하지만 꼴에 죄책감에 사무쳐 생각해 낸 대사였다. 지금 보면 이런 최악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아직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괴롭다. 다행히 상대는 그런 나를 용서했고,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규정 못할 사이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때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그 이후 때때로 누군가의 관계에서 마음앓이를 하는 순간이 오면 이렇게 되뇌곤 한다. 그래, 나는 벌을 받고 있는 거야.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입혔으니 나도 그만큼의 상처는 받아야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 맘이 편해진다. 내 양심의 이상한 저울이, 삐걱삐걱 움직이며, 신박한 합리화의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솔직히 그때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네가 시시해. 나는 외로워. 계속 함께 한다면 앞으로도 시시할 거 같아서 나는 새로운 모험을 떠나고 싶어졌어. 써놓기만 해도 소름 돋는 개소리지만. 밖으로 뱉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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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음악 같다. 일정한 프레이즈가 반복되고, 변주되며, 악장이 나뉘고, 악장별로 테마가 갈라지고, 이윽고 마지막 악장엔 이전 악장들에서 행해졌던 모든 요소들이 몰아치듯 나타난다.
최근 연애를 끝내고 나는 나 자신에게 질려버렸다. 최악의 2악장이었다. 근데 원래 모든 교향곡의 2악장은 어둡고 거칠고 위태롭다. 원래 그런 거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그 경험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겨우 잠깐의 평안이 찾아왔고, 나는 홀로 서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시작의 프레이즈를, 그 멜로디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되도록이면 잔향이 오래가는 그런 음악이 되고 싶다고... 바라본다. 물론 잊어도 그만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