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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단단 Dec 14. 2022

우리들의 쇼핑엔 이유가 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지름신에 대한 기록들


모든 것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배가 고프니까 먹는 거고, 졸리니까 자는 거고, 뭔가 떙기는 구석이 있으니까 누군가를 열렬히 사모하는 것일 테고... 점점 자라는 손톱과 머리를 부지런히 깎고 다듬듯이, 인생을 아우르는 거의 모든 일들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결코 넘겨 버리거나 무시할 수 없는 치명적인 이유를 달고서 말이다.


쇼핑도 그렇다. 나는 소비욕구가 그냥 '지름신'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져 버리는 게 꽤 불만스럽다. 물론 자신이 가진 금전적 상태에 비해 과한 소비를 하는 건 위험하지만, 때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하는 무언가가 나타날 때가 있다. 그리고 그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게 되는... 경이로운 기분에 맞먹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시야에 계속 어른어른 거리고... 눈에 밟히고, 뭘 하던 계-속 생각난다. 갈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괴롭고 불안해진다. 게다가 물건은 사람이랑 달라서 조금만 부지런하면 영원히 '손에 넣을 수도 있다'.


패션의 흐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한 번 사라져 버린 제품은 죽을 때까지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게다가 인기가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걸 말이다. 물욕과 소비욕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맹비난을 받는... 어쩌면 욕망 중에서도 최하위 권에 속하는 영역이지만 그에 반해 만족지수는 가장 높을 수도 있다. 먹으면 사라지고, 시도 때도 없이 모양이 변하고, 활활 타오르다 식어버리는 하찮은 감정 따위보다 옷장 속에, 신발장 속에, 언제나 한결같이 자리 잡고 있는 물건들이 때론  더 안정감을 가져다 줄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모든 쇼핑엔 '남는 게'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될 이야기들은 그 별별 '이유'들에 대한 기록이다. 사실 그것 자체를 구매해야 하는 이유엔 별 특별할 게 없다. 어느 순간 내 눈에 들어왔으니까, 내가 원하던 스타일이니까, 어쨌든 이쁘니까. 그게 다다. 하지만 그 가방에, 그 신발에, 그 옷들에... 다다르기까지에 대한 여정은 저마다 다르다. 어느 날 솟아난 소비욕을 파고파고 파고파고 파헤치다 보면 여러 가지 입체적인 이유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중엔 실직도 있고, 이별도 있고, 나이가 들면서 고수하던 스타일에 대한 변화도 있을 테고... 서서히 변해간 체형과 외모, 취향에 대한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때론 남몰래 선망하던 누구처럼 보이고 싶기도... 어쩌면 그동안 꾹꾹 참고 지냈던 막연한 불편함에 대한 해방, 또한 그것에 대한 갈망까지도 섞여있다. 나는 그 다양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어제 일이 있어 압구정에 들렸다가, 귀가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자연스레 근처 백화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도 불렀다. 나이가 몇인데 엄마랑 쇼핑하러 다니느냐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엄마만큼 훌륭한 쇼핑 메이트도 없다. 가장 솔직하고 가장 믿을만하다. 게다가 내게 어떤 말을 던져도 상처받지 않는다. 누구보다 날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매번 그랬듯 우린 만나자마자 매장을 구석구석 둘러보기 시작했다. 압구정 현대백화점의 지하 2층 리모델링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각각의 브랜드들의 영역을 뚜렷이 구분해 놓지 않은 것도 그렇고, (물론 매장별로 진열해 둔 곳도 있지만) 마치 거대한 편집샵처럼 꾸며 놓아서 고객들이 오로지 제품만에 집중하게 해 둔 것도 맘에 쏙 든다. 사고 싶은 제품이 이미 정확히 결정된 이들, 곧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들에겐 좀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거야 지도 보고 물어물어 찾아가면 그만이니까. 어쨌든 아이쇼핑엔 최적이며 게다가 그게 곧 예상치 못한 구매로 이어질 테니... 참 똑똑한 전략이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곳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완벽한 메리제인 슈즈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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