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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단단 Dec 25. 2022

애도의 창조적 방식

이시우치 미야코 Ishiuchi Miyako


당신의 물건들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은 한 개인에게 큰 의미로 작용합니다. 어쩌면 그 한 사람의 의지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하는 장치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이는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선택과도 연결됩니다. 선택은 개인의 의지를 대변하는 행위이며, 그 맥락에서 이어지는 '소유'라는 행위는 선택을 물성으로 보여주는 가장 피상적인 척도나 다름없지요. 아마 그 물건들, 당신의 선택을 받았던 그것들은 당신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여기 남아있을 것입니다. 당신과 직접적인 관계에 놓여있던 이들, 당신을 지켜봐 왔던 주변인들, 설령 당신을 전혀 몰랐던 이들이라도 이 물건들을 통해 당신에 대한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할 수 있겠죠.


Yokosuka Story #73, Ohtaki-cho, 1977 © Ishiuchi Miyako


오늘 소개할 작가인 이시우치 미야코 Ishiuchi Miyako는 1975년 독학으로 사진을 시작한 뒤, 2014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핫셀블라드 어워드 (사진계의 노벨상. 스웨덴의 카메라 및 사진 장비 제조 업체인 핫셀블라드 Hasselblad의 주관으로 진행되며, 매년 현업에서 3년 이상 종사한 전문 사진가들을 심사 대상으로 함)를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진가입니다. 그녀는 독특한 대상을 선택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촬영합니다. 신체에 남겨진 흉터나, 죽은 이의 유품 등을 말이죠. 대학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했던 그녀는 신체와 이를 감싸는 의복이 주체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주체의 몸을 강화하고 보호함과 동시에 개인의 취향과 일생의 흔적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녀의 피사체로 선택된 것들은 천으로 된 의류나 신발들, 다시 말해 인간의 두 번째 피부라고도 여길만한 신체와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던 물건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감상자는 이를 사진 속 물건들을 판단의 도구로서 감지하게 되죠. 누군가의 죽음 뒤에 남겨진, 그들과 가장 밀착해있던 물건들을 관찰하며 사라진 존재들과 과거의 흔적들을 밀착된 시선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Club & Courts Yokosuka Yokohama #43, 1988-1980 © Ishiuchi Miyako


유품을 찍는 사진가


훗날 이시우치는 가장 밀접한 이의 유품을 대상으로 한 촬영을 시도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죠. 이는 마치 창의적인 방식의 초상화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애도의 방식이자, 이미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는 세상을 떠나버린, 이젠 죽은 이로서밖엔 인식될 어떤 이의 존재를 다시금 세상에 선포하는 세련된 추도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Mother’s #38 © Ishiuchi Miyako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인 2004년 세상에 공개된 멕시코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의 유품들을 찍는 작업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아마 작가는 작품을 현상하던 붉은빛 암실 속에서, 생존 당시의 프리다의 감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테죠. 닳아 있는 신발의 양쪽 굽의 확연한 차이를 목격했을 때, 어린 시절 소아마비와 큰 사고로 인해 절름발이가 되었던 프리다의 위태로운 보행을 떠올리면서 말이죠. 이처럼 그녀는 존재에 대한 밀착된 시선을 주체가 소유했던 물건을 통해 관객과 공유하고, 이를 통해 그 존재의 일상까지 깊숙이 침투하도록 만듭니다.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이들은 이 유품들을 통해 고인과의 가상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되죠. 이토록 고결한 상기의 방식이 또 있을까요?


Frida by Ishiuchi #36, 2012/2015 © Ishiuchi Miyako


흔적으로서의 사진


흉터는 상처가 치유된다는 긍정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상처의 흔적이라는 부정적 의미로써도 읽힙니다. 종종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길 꺼리며 어떻게 하면 가릴 수 있을지 고민하죠. 하지만 작가는 이 흉터를 통해 대상의 더 은밀하고 더 깊은 사적인 영역으로 진입합니다. 신체의 일부에 용접되어 있는 과거에 대한 각인을 천천히 살피기 시작하죠. 전시된 흉터의 모습들은 단순히 상처의 흔적들의 나열일 수 있겠으나, 작가는 오히려 이 흉터에 의미를 두고 접근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상처의 영역까지 헤아려 볼 수 있는 여지를 관객에게 제공합니다.  


Ishiuchi Miyako, Atomic Bomb Artifacts, Hiroshima 1945/2007 @Andrew Roth


이시우치의 작업들 중 가장 극명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히로시마 원폭 현장에 남겨진 물품들을 찍은 작업입니다. 2007년에 시작된 이 작업은 작품을 맞닥뜨리는 그 순간, 현실과 1945년의 사건의 거리감은 순식간에 증발합니다. 작가는 사망자가 직접 사용하던 물품들을 수집해 직접 촬영했고, 대부분 의복의 형태를 띤 천 조각들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옷에 대한 그녀의 철학이 반영된 탁월한 선택이었죠.  



       생선을 발라 먹으며 생각한다

       사랑은 연한 살코기 같지만

       그래서 달콤하게 발라 먹지만

       사랑의 흔적

       생선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는구나

       나를 발라 먹는 죽음의 세상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내 열애가 지나간 흔적 하나

       목젖의 생선가시처럼

       기억해 주는 일

       (사랑의 흔적, 유하)


결국 이 모든 것은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트라우마의 전후의 개인은 몰라보게 달라지게 되는데, 사실 그 당사자가 아닌 이상, 단순한 겉모습만으로는 이를 알아챌 수 없는 경우가 많죠. 이처럼 어떤 큰 사건 이후의 '남겨진 흔적’을 찍는 작업들은 과거의 특정 상황을 현재에서의 새로운 시각으로 마주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한 순간에 우리를 그 현장으로 데려다 놓죠. 그곳에서 우리는, 어쩌면 당시에도 목격하지 못했던 사건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저 그들을 위해 슬픈 감정을 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던, 벅찬 애도의 가능성이 탄생합니다. 


그럼 여기까지,

당신의 주단단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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