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야? 어, 아직 싱글이야.

0.4 제곱킬로미터 안에서 벌어진 엄청난 범죄

by 이동민

내 아임다. 왜 자꾸 내라고만 생각함까?


약 7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범죄도시'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사실 몇 번은) 봤을 법한 유명한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가리봉동인데, 가리봉동의 행정 구역상 면적은 약 0.40제곱 킬로미터이다. 대한민국 총 면적이 약 100,000제곱 킬로미터이니 가리봉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시할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 비록 영화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 이 좁은 구역에서 며칠 안에 일어나는 범죄는 실로 '범죄도시'라 불릴만하다. 아래 점선 사이 부분은 영화의 내용 중 범죄를 요약한 것이다.



내가 범죄도시를 보고 대략적으로 기억하는 주요 범죄만 해도 다음과 같다. 영화는 '독사파 조직원 살인미수'로 시작한다. 그리고 흑룡파 두목 장첸(윤계상)은 채무자에게 채무 독촉을 하기 위해 채무자에게 '중상해'를 입힌다. 그리고 그는 채무자를 도와주러 온 '독사파 두목을 살해'한다. 그리고 곧바로 독사를 불러온 '채무자까지 살해'한다. 이에 독사파를 흡수한 장첸 일당은 기분이 좋아져서 근처 룸살롱에 술을 마시러 가는데 그 자리에서 룸살롱을 관리하던 직원의 팔을 자른다. 경찰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막내 형사에게 상해까지 입히고(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에 해당하는 중범죄이다. 참고로 살인이 5년 이상이다), 마석도(마동석)에게까지 칼로 상해를 입힌다.


경찰로부터 도망친 장첸 일당의 범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 일당은 이수파 두목을 살해하기 위해 이수파 두목 장이수 어머니의 회갑연에서 폭행을 저지르고, 회사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장이수를 살해'한다. 룸살롱 소유자인 황사장은 자기 부하의 팔이 잘린 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 장첸 부하에게 상해를 입히고, 장첸은 이에 대한 복수로 황사장 룸살롱 직원 3명을 살해(확인된 것만)한 후에 황사장을 살해하려 하나 실패한다.



실로 이들의 범죄는 어질어질할 정도인데, 대략 세어보니 6건의 살인이 일어났고(확인된 것만 그렇다는 뜻이다), 2건의 살인 미수가 있었으며, 중상해는 최소 3건 이상,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죄는 2건 이상, 사소한 집단 폭력 범죄는 최소한 4건 이상 일어났다. 100,000제곱 킬로미터의 면적 중 약 0.000004 퍼센트에 해당하는 구역에서 며칠 안에 일어난 범죄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런 범죄도시는 실제로 존재할까?






케틀레와 앙드레-미셸 게리, 그리고 시카고 학파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범죄의 핫스팟hot spot이 존재한다고 처음 생각한 사람은 케틀레와 앙드레-미셸 게리다. 하지만 케틀레와 앙드레-미셸 게리의 범죄통계이론은 정교한 분석을 통한 것도 아니었고, 범죄와 지역 사이의 상관관계를 엄밀하게 분석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교육 수준이 높은 곳에서 경제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까닭을 '약탈 가능한 부의 총량'과 관계 있다고 설명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일정한 지역에 범죄가 몰리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정교한 이론을 세운 것은 그들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후 시카고 대학의 일련의 학자군(群)이었다. 그 학자군은 시카고 대학에서 활동하는 교수들이었기 때문에 시카고 학파Chicago School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들의 이론은 사회해체이론이라고 명명되었다.






침입, 지배 그리고 승계


시카고 대학의 로버트 파크Robert Ezra Park는 식물의 생태학에서 주로 일어나는 일이 인간 사회에서도 발생할 수 있음에 주목하였다. 동물 생태계와는 달리 식물 생태 안에서는 비슷한 자원으로 경쟁을 하는 일이 잦다. 다양한 먹이에 따라 서식지가 달라지는 동물과는 달리, 식물의 생장에는 충분한 양의 태양광, 물, 질소 등의 무기물이 공통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많다(물론 예외도 있다). 이에 식물들 사이에는 '자라기에 좋은 조건'이 존재하는데, 파크는 이런 좋은 조건의 균형적 상태가 외래종에 의해 종종 파괴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외래종은 좋은 조건의 입지에 침입하여, 왕성한 번식력으로 그 지역을 지배하고, 결국 그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승계succession한다. 그 과정이 끝나면 원래 살던 종은 멸종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다.


파크에 따르면 인간 생태계에도 침입, 지배, 승계의 유사한 과정이 나타난다고 한다. 상업지역과 공업지역은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장소이다. 반면, 거주지역은 아무런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결국 '좋은 입지'는 상업지역과 공업지역이 차지하게 되고, 거주지역은 높은 집적률을 보이지도 않고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지도 못하는 이유로 외곽으로 쫓겨난다.**



concentric



도시의 동심원 이론


로버트 파크의 제자 어니스트 버지스Ernest Watson Burgess는 스승의 이론을 발전시켜 동심원 이론Concentric Zone Theory을 발표하였다. 도시는 성장함에 따라 접근성이 가장 좋은 도시의 중심에 상업이 주로 발달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공업구역이 그 외곽에 배치된다. 공업구역은 부가가치 뿐만 아니라 상업구역으로 물품을 공급한다는 점에서도 주거지역에 비해 높은 중심 선호도를 가진다. 여기까지가 Zone 1이다.


Zone 2는 점이지대zone of transition***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Zone 1에 대한 상업, 공업 구역의 침입, 지배, 승계가 끝나고 나면 그 바로 바깥의 Zone 2는 공장의 매연, 소음, 복잡한 교통 등으로 인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 된다. 결국 그 지역에 살던 사람은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사람들이 살지 않는 집은 급격히 노후화된다. 그리고 부랑자, 이민자, 빈민이 그 지역에 살면서 범죄가 집중된다. 즉 범죄의 핫스팟은 이 점이지대에 위치할 확률이 높다.


Zone 3은 점이지대에 사는 자들보다 경제적 형편이 조금 나은 노동자들이 사는 근로자 지역, Zone 4는 중산층이 사는 거주지역, Zone 5는 최상위층이 주로 거주하는 통근지역으로 주로 불린다.****






현실의 접목


우연히도 '범죄도시'의 무대인 가리봉동은 구로 디지털 단지와 가산 디지털 단지의 사이에 있다. 예전에는 구로공단까지 그 근처에 있었으니 그 지역이 낙후된 이유가 파크와 버지스에 의해 설명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대구에도 비슷한 사례가 존재하는데 서대구 산업 단지와 대구 염색 일반 산업 단지 사이에 있는 평리동, 비산동은 대구 중심과 비교적 가깝지만 선호되는 거주지역이 아니다. 물론 파크와 버지스의 동심원 이론이 거주공간으로서의 아파트를 선호하는 우리 문화에 완전히 적합한 이론은 아니지만 몇몇 핫스팟의 존재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




*시카고 학파Chicago school는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 걸출한 경제학자이 대거 포진된 경제학파를 이르는 말로 주로 쓰인다. 하지만 사회학의 시카고 학파Chicago school of sociology도 그 못지 않게 유명한데, 사실 중등교육에 대한 영향력으로 보자면 사회학의 시카고 학파가 (경제학의 그것보다)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 Succession, an ecological concept, Robert Ezra Park, 1936


*** zone of transition 또는 transition zone은 전이(轉移, 사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다), 천이(遷移, 옮기어 바뀌다), 점이(漸移, 차차 옮아가 바뀌다) 지역, 지대 등으로 번역된다. 여기에서는 교과서에 채택된 단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교과서의 점이지대는 버지스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에 구분된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The Growth of the City: An Introduction to a Research Project, Ernest W. Burgess,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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