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짧은 문장 하나에 담긴 수많은 편견과 구조적 차별
20세기 말, 세기말 다움을 잘 대변하는 하나의 문장이 있었는데 여자에게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는 말이었다. 특히 운전 중에 그런 말을 서슴지 않는 자들이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완전히 비합리적인 말이다. 어떤 누구도 밥(여기서 밥은 식사를 뜻하는 것임은 틀림없다) 없이 살 수 없음에도, 밥'이나' 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밥을 해야 할 귀하신 분이 운전이라는 누추한 일을'이라고 말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나'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물론 '이나'라는 조사가 이런 용법 외에는 대부분 좋음, 많음 등과 같은 뜻의 단어와 결합한다는 점은 아이러니이다.*
Steven Messner and Ricahrd Rosenfeld는 Crime and the American Dream(2013)에서 저런 말도 안 되는 태도를 가지게 된 원인을 4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는 강력한 성취achievement에 대한 열망이다. 이런 열망은 그 사람이 이룬 결과물에 따라서만 그의 능력과 노력을 평가하게 만든다. 아무리 가치 있는 도전이라고 하더라도 일정한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에 대한 기여의 실패와 똑같이 평가된다. 유튜브를 시작하는 주위 사람에게 구독자가 몇 만이냐, 조회수는 얼마나 나오냐라고 묻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이다. 이는 다른 사람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고 타인을 내 성공을 위한 도구로만 평가하게 만든다. 특히 요즘 세대에 이런 경향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주변에 성공한 친구를 둬야 나도 성공한다는 신념이나 세금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이런 개인주의의 발로일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는 보편주의universalism인데, 이런 태도는 성공에 대한 기준을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한다는 점에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가치관, 능력과 태도가 어떻든 성공의 목표가 똑같이 부여된다면 공동체의 구성원은 필연적으로 '보편적으로 순위가 매겨진 것'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메스너와 로젠펠드는 마지막 요인으로 물신숭배fetishism를 지적한다. 돈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교환 기능, 평가기능을 넘어 모든 것은 가치 기준으로서 정착되었다. 이런 태도는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훌륭한 사람'이라는 항등식을 우리에게 주입함으로써 돈이 분배할 수 없는 '도덕적, 윤리적 가치'까지 마치 분배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예를 들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나 잘 사는 집의 학생은 행실이 바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물신숭배적 태도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재벌 총수는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도 이런 태도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위에서 말한 네 가지 태도는 각각 또는 결합하여 경제적 제도가 정치, 사회, 교육, 공동체** 제도를 압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메스너와 로젠펠드는 경제적 제도가 나머지 제도보다 우월적 위치를 차지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은 세 장면으로 묘사한다.
경제적 제도는 처음에 다른 제도의 기능을 가치 절하devalued 시킨다. 이런 구조적인 힘은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경제적 활동을 하는 사람보다 열등하거나 종속적인 위치로 그려낸다. 경제적 활동을 하는 사람은 가정에서는 가장(家長)이라 불리고,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숭배된다. 학교의 교사는 월급이라는 경제적 제도의 힘에 의해서 학원 강사보다 '실력이 없는 것처럼' 묘사된다.
경제적 제도는 비경제적 제도의 가치를 절하한 후에 힘을 키워서 자신의 요구를 수용acceptance하도록 만든다. 가족 행사는 가장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인다. 미리 약속된 일정이라고 하더라도 경제적 제도의 요구에 따라 쉽게 조정되기 마련이다. 학교에서는 기업이나 사교육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처럼 교과서에 기업의 영향력이 발휘되지는 않지만 현장학습이나 수학여행에는 이런 요구가 수용되는 일이 많다. 또한 일부 사교육의 영역(주로 예체능)에서는 정규 교과시간까지 학교가 경제적 요구를 수용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규범은 나머지 모든 규범의 영역 안으로 침투penetration하기 시작한다. 부모의 '학예회 참가'는 주로 용돈으로 보상된다. 더 중요한 점은 이렇게 보상이 이루어지고 나면 이런 침투는 비가역적이어서 다시 비경제적 행위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예회에 불참한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해 준 부모는 다음 학예회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금전적 보상을 해줘야 한다. 학교에서는 이미 이런 침투 현상이 극명하게 일어났는데, 시골 학교에서는 (특히 코로나가 한창 유행일 때) EBS 강의나 '일타 강사'들의 온라인 강의가 현장 강의를 대체했다.
이런 제도적 불균형은 경제적 제도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제도의 무규범 상태anomie 그 자체이다. 도덕이나 윤리가 들어갈 곳에 돈이 있다면 공동체는 분명히 해체된다. 이런 태도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책임의식을 약화시켜서 '복지', 그리고 그것에 필요한 재원인 '세금'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드러내도록 만든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경제적으로만 보상될 수 있다면 '감옥에 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얼마를 주면 감옥에 갈 수 있느냐는 질문은 이미 진부해졌다. 왜냐하면 많은 아이들이 (금액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돈만 주면 충분히 감옥에 갔다 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관의 현대적 모습은 '형사보상금'***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인데, 법률에 대한 강의를 할 때 형사보상금 이야기가 나오면 학생들은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보다는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이런 도덕적 냉소주의moral cynicism가 범죄를 양산한다는 것이 메스너와 로젠펠드 이론의 주된 논리이다.****
* '대통령이나 된 것처럼'에서 이나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뜻으로, '벌써 백 명이나'에서 이나는 크거나 많음을 뜻하는 보조사로, '우리 선생님이나 되니까 너를 배려해주시는 것이지'에서 이나는 최선의 자격을 뜻하는 보조사로 각 쓰인다.
** 엄밀하게 말하면 사회와 공동체는 다른 용어이다. 사회societas는 의도적, 목적적 집합체로 그중에서 경제적 의도로 뭉친 집합체는 회사라고 한다. 공동체comunitas는 비의도적, 운명적 집합체로 일정한 목적 없이 주어진 모임이다. 일상 용어에서는 마치 반대인 것처럼 쓰이나 이 차이를 분명히 할 필요는 있다.
*** 형사 피의자나 피고인으로 체포 또는 구속되었던 자가 무죄인 것으로 밝혀지면 국가에서 구금된 기간을 보상하기 위해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Steven Messner and Ricahrd Rosenfeld, 《Crime and the American Dream》,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