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권리와 그 반대관계에 있는 무권리, 자유와 그 반대관계에 있는 의무에 대해서 설명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권리는 광의의 권리와 협의의 권리로 구별하여야 한다. 광의의 권리는 청구권, 자유권, 권한, 권능 등 폭넓은 개념을 아우르는 일상 용어이다. "나에게도 말할 권리가 있다."에서 쓰인 권리는 광의의 권리로 자유권의 일종이다. 법학에서는 권리를 주로 협의의 권리인 청구권으로 축소해서 부른다. 물론 법적으로 사용되는 모든 '권리'가 청구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청구권은 상대방에게 특정한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너무 당연하게도 청구권의 (존재 유무에 따른) 반대는 '청구권 없음'이다. 청구권의 대척점에 있는 힘도 있다. 호펠드는 이를 자유권이라고 했는데, 자유권은 특정한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요구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힘이다. "나에게도 말할 권리(자유권)가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해 "당신은 말하지 마시오."라고 할 힘이 없다는 뜻이다. 자유권의 (존재 유무에 따른) 반대는 '자유권 없음', 즉 '의무'이다.
특정한 행위의 요구나 거절에 관한 힘이 아니라 상태나 지위에 관한 힘도 있다. 형성권Gestaltungsrecht은 자신의 의사표시만으로 상대방의 지위를 변동시키거나 새로운 법률관계를 창출하는 힘을 말한다. A는 B가 소유한 부동산을 100만 원에 사려고 한다. 2024. 1. 30. A와 B가 만나 계약서를 작성하고 A가 B에게 계약금 10만 원을 주면 계약이 체결(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줘야 계약이 체결되는 것은 아니다)된다. 계약이 체결되면 계약 내용에 따라 A는 B에게 부동산을 달라고 청구할 수 있고, B는 A에게 잔금 90만 원을 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뀐 A가 '10만 원을 돌려주지 않아도 되니 없었던 걸로 합시다'라고 말하면 B는 더 이상 A에게 돈을 달라고 할 수 없다. 법률관계가 변동된 것이다. A가 B에게 행사한 해제권(민법 제543조)이 가장 대표적인 형성권이다.
형성권의 대척점에는 면제권이 있다. 면제권은 상대방의 처분에 따라 자신의 지위 변동을 겪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호펠드가 말한 면제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호펠드는 법적인 용어를 잘 가다듬어 예리하게 사용하고자 개념을 정리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상대방의 처분에 따라 지위 변동을 겪지 않을 힘'은 상정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형성권 행사를 제한하는 법규정이 존재할 뿐, 개인에게 면제의 권리가 따로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법적으로도 '면제'는 '이미 발생한 의무나 책임의 멸각'을 뜻하는 것으로 면제는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권리라기보다는 권한에 가깝다. '연대채무자에 대한 채무면제(민법 제419조)', '조합원에 대한 근로시간 면제(노동조합법 제24조)' 등 면제는 권리라기보다 권한에 친하다.
이해를 위해서 만든 소제목이니, 정확한 표현이 아님을 미리 말해둔다. 권리는 그것을 보유하고 행사하고 이익을 향유하는 자가 일치하지만 권한은 힘을 보유하는 자와 행사하는 자가 다르거나 행사하는 자와 힘의 행사에 따른 이익을 향유하는 자가 다르다. 대리인이 가지고 있는 대리권은 권한이다. 쉽게 말해 내가 A를 대신하여 법정에서 변호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물론 생계를 위한 목적까지 넓게 고려한다면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A를 위한 것이다. 내가 제대로 변론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이 감옥에 가는 것은 (아쉽게도) 너무나 당연하다. 따라서 호펠드가 말하는 면제권(리)은 흔하지 않고 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행사하는 권한과 더 친하다. 호펠드의 이론이 틀리고 맞다는 뜻이 아니라 면제라는 용어를 우리 실무에서는 그렇게 사용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힘을 행사해서 대통령이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이익을 누리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다. 물론 그 말이 지금 2024년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제대로 그려내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