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의 행위는 1개 범죄 구성의 요건이 됩니다. 사람을 살해하면 1개의 살인죄에 해당하고, 폭행이나 협박을 동원해 성관계에 이르면 1개의 강간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우리 형법에는 1개의 행위가 수 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1개의 행위가 각 별도의 범죄를 구성하면 이 별도의 범죄 사이를 상상적 경합 관계라고 판단하고 이 중 무거운 죄로만 벌합니다. 상상적 경합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을 하면 간통죄에 해당하고, 배우자 있는 자와 상간 한 자도 간통죄에 해당합니다. 즉, 배우자가 있는 사람끼리 정을 나누면 자신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간통죄가 성립하고 상대방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간통죄가 성립합니다. 이렇게 1번의 행위로 두 개의 간통죄가 성립하지만 이는 형을 과함에 있어서 1개의 죄로 평가합니다.
한국제강의 대표이사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중량물 취급 작업에 관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하고(산안법 상 의무),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업무를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중대재해처벌법 상 의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두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제강의 하청업체에 소속된 피해자는 1.2톤 중량의 철판을 말끔하게 만드는 작업 중에 철판에 깔려 사망하였습니다. 철판을 들어 올리는 리프링 러그lifting lug에 샤클만 체결했어도 막을 수 있는 사고였지만, 5만 원도 하지 않는 샤클을 체결하지 않아 철판이 떨어진 사고였습니다.
근로자의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는 그 업무상 주의의무가 일치하여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 이 사건에서 한국제강 대표이사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에 따라 부과된 안전 확보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에 따라 부과된 안전 조치의무와 마찬가지로 업무상 과실치사죄의 주의의무를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위반 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 역시 행위의 동일성이 인정되어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
: 대법원은 산안법이 제정된 목적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목적이 유사하고, 대표이사가 산안법을 위반함으로써 발생한 결과(피해자의 사망)와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함으로써 발생한 결과(피해자의 사망)가 동일하기 때문에 별도의 의무를 위반하여 두 조항 모두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1개의 행위로 인한 결과 발생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해당 쟁점의 취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형량에 대해서는 아쉽습니다. 한국제강의 대표이사에게는 징역 1년 형이 선고되었는데, 한국제강 사업장에서는 1년 사이에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2명이나 있었습니다. SPC와 같이 반복적으로 사망사고가 일어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조금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벌써 세월호 참사 10주기입니다. 앞으로 산업 현장이든 일상의 공간에서든 억울한 죽음이 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