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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May 02. 2024

준강간의 불능미수

쟁점: 공소장 변경 없이 장애미수를 불능미수로 인정할 수 있는지


강간은 폭행이나 협박으로 사람을 강제로 간음(성기에 성기를 삽입)하면 성립하는 죄이고, 폭행이나 협박으로 사람의 성기 아닌 신체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나 항문에 성기 아닌 신체, 도구를 넣으면 유사강간으로 처벌됩니다. 폭행이나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 자는 강제추행으로 처벌받게 됩니다. 준강간, 준강제추행이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추행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술이나 마약에 취해있는 사람을 강간하면 준강간으로 강간과 똑같이 처벌되고, 추행을 하여도 준강제추행으로 강제추행과 같이 처벌됩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취해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정신이 또렷한 사람을 '취한 상태로 잘못 알고' 강간하면 강간이 처음부터 불가능하였다고 판단됩니다. 이를 불능미수라고 합니다. 반대로 강간을 시도하려는 도중에 상대가 깨어나서 저항하는 끝에 강간에 이르지 못했다면 이는 장애미수라고 합니다. 이 둘의 법적 평가는 비슷한 것 같아 보이지만 확실히 다릅니다. 이 사건에서는 장애미수로 기소된 사건을 불능미수로 처벌할 수 있는지 문제 되었습니다.  




사실관계


피해자는 상당히 취한 상태에서 '차에 가서 잠을 자야겠다.'라고 말하면서 승용차에 탑승하였고, 피고인은 피해자와 같은 차의 조수석에 탔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잠이 든 것처럼 보이자 피해자의 이름을 몇 번 불러 보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피해자를 안아서 뒷자리로 옮긴 후에 추행을 하였습니다. 추행 중에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준강간을 하기 위하여 옷을 벗기고 강간을 시도하였으나, 간음 전 피고인이 동영상 촬영을 시도하는 바람에 동영상 촬영음을 듣고 정신을 차린 피해자가 거부하여 준강간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자가 의식불명 상태인지에 대한 강한 의심이 들어 재판부는 불능미수로 유죄 판결을 내리려 하였지만 검사는 끝까지 장애미수를 주장하며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았고, 원심은 공소장 변경이 없으므로 장애미수로 판단할 수 없어 무죄 선고를 하였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2024. 4. 12. 선고 2021도9043 판결)


: 공소장변경 없이 직권으로 준강간죄 불능미수의 범죄사실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준강간죄의 불능미수는 피고인이 준강간의 고의로 실행에 착수하였다는 점, 피해자가 당시 실제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다는 점, 준강간의 결과 발생 위험성이 있었다는 점이 인정되면 성립하는 범죄이다.

피고인은 이 사건 공판 과정에서 '준강간의 고의가 없었고,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도 않았다.'는 취지로 다투었고, 이에 따라 피고인이 준강간의 고의로 실행에 착수하였는지 여부, 피해자가 당시 실제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에 관해서 충분한 심리가 이루어졌다. 또한 준강간의 결과 발생 위험성은 피고인이 당시 인식한 사정을 기초로 일반인의 객관적 관점에서 판단되어야 하는데, 피고인에게 준강간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관한 심리 과정에서 피고인이 당시 인식한 피해자의 상태와 관련된 사정에 관해서 충분한 공방이 이루어졌다. 결국 이 사건 공판 과정에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성립 여부와 관련된 심리 및 공방이 이미 충실히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 미수라고 하더라도 법적인 효과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실행에 착수를 했지만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고 중지하거나 결과발생을 방지하려는 자는 중지미수라고 하여서 반드시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실행에 착수를 했지만 애초에 결과발생이 불가능한 불능미수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습니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애초에 결과발생이 불가능하여 비난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실행에 착수했지만 다른 사람이나 외부의 여건 때문에 종료하지 못한 것은 장애미수로 구별하고, 이는 형을 감경할 수 있습니다. 비난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면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검사는 장애미수로 처벌되길 원했고, 법원은 애초에 의식을 잃을 만큼 취한 것이 아니라서 불능미수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두 범죄 사이에는 방어권 행사의 방향이 다를 수 있으므로(장애미수는 저항의 요소를 주된 쟁점으로 불능미수는 블랙아웃이나 패싱아웃 여부를 주된 쟁점으로 다퉈야 할 것입니다) 공소장이 변경되어야 함이 원칙입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방어권 행사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장애미수로 기소가 된 사건이라도 불능미수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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