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사이, 동쪽으로 열린 공간으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이 섬처럼 보인다. 도시의 심장부가 안개 바다에 싸여 있다. 가을이 오면 안개 필터가 드리운 풍경 속으로 도시의 감춰진 표정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세종시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조용하고 쾌적하면서도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허리를 감싸며 건물 사이를 춤추듯 흐르는 안개를 마주했다. 또 다른 날엔 더욱 짙어진 안개가 중앙 정원의 소나무 몇 그루만 남겨 놓았다. 흐릿한 빛 속에서 소나무는 동양화의 한 획처럼 선명했고, 솔잎들은 구름처럼 떠다녔다. 무표정한 일상에서 한 폭의 그림을 본 순간, 허전한 마음 한쪽이 따뜻하게 채워졌다. 그날 이후, 일교차가 큰 날이면 서둘러 알람을 맞추었다.
안개를 따라 걷는 길은 언제나 초행이다. 익숙한 거리 풍경이 사라진 자리에 낯선 공간이 펼쳐진다. 시야는 좁아지지만, 감각은 확장된다. 안개에 섞이지 못한 풀잎의 이슬마저 선명하게 보인다. 실루엣만 남은 건물은 선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그것은 무심히 지나쳤던 도시의 낯선 층위들이다. 이렇듯 안개는 감추며 드러낸다. 단조로운 인식을 허물고, 이 도시의 다층적 면모를 보여주는 안개의 역설이다.
금강 위로 안개가 피어오르면 현실 공간은 안개 너머로 사라진다. 높은 빌딩의 상층부만 구름 위의 성채처럼 솟아오른다. 이 몽환적인 풍경 속에서 거대한 원형의 윤곽이 금강 위에 떠오른다. 보행자 전용 다리 ‘이응교’다. 자음 ‘ㅇ’을 닮은, 이 다리는 지름만도 460미터에 달한다. 안개 사이로 드러나는 이응교의 곡선은 도시의 각 생활권을 잇는 하나의 고리처럼 보인다. 원의 중심에 흐르는 금강은 고요한 원무(圓舞)의 무대 같다. 구조와 풍경, 사람과 자연이 함께 걷는 곡선이 그 안에 있다.
이응교를 건너 강북으로 들어서면, 안개 속에서 공사 가림막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 너머로는 흙이 드러난 평야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땅 위에는 굵은 바퀴 자국과 장비의 흔적이 겹겹이 남아 있다. 오래전부터 금강이 넘칠 때마다 퇴적물을 쌓아 만든 이곳, 장남평야는 한때 벼가 자라던 들판이었다. 황금빛 벼 이삭이 스쳐 간 들녘 위로 땅의 고단한 숨결이 안개처럼 피어난다. 그 안개 속에는 금강이 비옥한 대지를 빚어온 시간과 때를 맞추어 땅을 일군 농부들의 삶, 그리고 이곳을 터전 삼았던 무수한 생명들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시간의 깊이와 넓이가 느껴진다. 이제 이곳은 건물로 채우지 않고, ‘비움과 공유’의 철학을 담은 자연과 시민을 위한 중앙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가림막을 따라 호수공원을 향하던 발걸음이 멈춘다. 익숙한 길에서 낯선 안개 광장이 펼쳐졌다. 들풀과 야생화만이 하늘과 땅의 경계를 알려줄 뿐 사람도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내 머릿속은 어디가 어딘지 모를 깜깜한 안개 속이다.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 놀라움과 당혹감이 온몸을 감싼다. 이곳은 정부세종청사의 중심부, 10구역부터 14구역까지 이어진 건물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도시의 핵심 건물이 사라진 곳에 내 안의 무심함이 가득 차 있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했다. “우리는 길을 잃고 나서야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깨닫는다.” 어쩌면 내가 장막 속에서 헤매는 이유도 이 도시와 나의 관계를 찾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
멀리서 바라본 청사는 하나의 선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 3.5km에 이르는 이 건물은 땅 위를 유영하는 거대한 생명체 같다. 15개 동이 연속적으로 연결된 모습은 처음엔 웅장하고 인상적이지만, 곧 의문이 생긴다. ‘왜 이렇게 길게 지은 거지? 이건 효율적이지 않아!’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속에서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고개를 들면 비슷한 창문과 벽면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하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이 분산된 구조에는 숨겨진 의도가 깃들어 있다. 청사는 기능을 집중시키기보다, 중심부를 시민의 공간으로 내어주며 감싸고 있다. 높은 권위 대신 낮은 자세로, 폐쇄보다 열린 경계로 도시의 조화를 이루려 한다. 이것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이다. 세종은 서울 중심의 중앙 집중에서 벗어나려는 국가적 실험장이다. ‘분산과 균형’은 이 도시의 핵심 정신이며, 청사는 그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도시가 서서히 깨어난다. 청사로 향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고쳐 쓰며 기침을 내뱉는다. 간혹 신비로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는 젊은 여성도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중앙공원에는 환경 운동가들의 외침과 시민들의 주장이 안개처럼 뒤섞여 있다. 도시 전망대에서 청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물 위를 나는 용처럼 웅장하게, 또 다른 누군가는 존재감 없는 뱀처럼 바라본다. 안개는 이 모든 시선과 목소리를 품은 채 세종의 아침을 조용히 감싸안는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깊어지는 합강 지역에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금강과 미호강의 온도 차와 물과 대기의 온도 차가 만들어낸 안개는 그간의 소란을 잠재우듯 고요하게 퍼진다. 억새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모래톱 위에는 이름 모를 생명체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이 작은 흔적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물안개 위로 붉은 아침 해가 떠오르면 철새들이 날아오르고 자연의 순환이 시작된다. 이 순환 속에서 모든 존재는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이러한 광경을 바라보며 안개 속에서 마주한 이 도시의 의미를 다시 떠올린다. 세종이 꿈꾸는 '비움과 공유', '분산과 균형'의 가치는 자연 속에 흐르는 '공존'의 원리와 닮아있다. 자연과 도시, 삶과 삶이 어우러지는 이 공간에 나 역시 숨 쉬고 있다.
* 이 글은 <에세이문학> 2025년 가을호의 완료 추천작으로 발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