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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지 Lindsey Dec 05. 2022

너의 모든 첫 순간


“아부지, 아부지!!” 몇일 전부터 가르쳐준 적도 없는 극존칭어를 쓰길래 뜬금없는 효심 발휘한다며 웃었다. 그러다 어제 처음으로 “할아버지”라는 말을 뱉었다. 혼자 몇날 몇일을 연습했던 거구나.  ‘엄,엄,엄’ 연습하고 ‘마,마,마’ 연습하더니 “엄마”를 외치던 3개월 라은이가 생각이 났다. 괜히 뭉클하다.


절대 안하려고 하던 것들을 스스로 한다. 손발톱도 그렇게 바둥대며 피하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먼저 깎아달라며 손톱가위를 내 손에 쥐어준다. 손톱발톱 하나하나 길이 체크하는 시늉까지 해가며. 약 먹이려면 울음홍수에 힘겨루기 전쟁이었는데 이제는 스스로 목까지 뒤로 젖혀가며 원샷! 해버린다. 카시트에만 앉으면 온 몸을 비틀어가며 탈출하던 터라 늘 바로 옆자리에서 전전긍긍 한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엄마아빠는 앞 좌석에, 라은이는 뒷 좌석에 앉아서 혼자 놀다 스르르 잠도 든다.


빨래를 정리해두면 양말들을 하나씩 양말통에 가져다 놓는다. 설거지 하는 내 옆에 와서 간절한 눈으로 두손을 뻗는다. (“주세요” 사인이다.) 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보울에 그릇 몇 개 담아 수세미를 쥐어줬더니 하나씩 하나씩 닦고 옮기면서 제법 그럴 듯한 시늉을 한다. 청소기를 돌릴 때면 와서 같이 잡고 쓱쓱 팔을 움직인다. (거의 매달려서 끌려 다닌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ㅋㅋㅋ) 어린이집에서도 선생님 손을 잡고 같이 청소기를 돌린단다.


기저귀 한번 잡고 아기변기 한번 가리키길래 한 번 변기에 앉혀봤더니 귀여운 염소똥 하나를 쌌다. 딱히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처음으로 배변훈련에 성공했다. 대견한 딸내미에게 오늘은 ‘인생 첫 피자’를 맛보게 해주었다. 포크로 야무지게도 찍어먹더라. 라은이의 온갖 ‘첫 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피곤하고 재밌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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