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시대의 끝이 도래했다.
시장이 불경기인 지금 매출 하락과 함께 회사는 코스트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움직이고 있다. 업황이야 오르막 내리막이 있지만 한번 줄인 코스트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말이다. 현재까지는 사람을 줄이려면 업무의 양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한 사람에게 두 사람 몫의 업무를 줘야 한다.
우리 회사는 업무 효율화를 통한 공수개선, 개선된 공수를 활용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업무 증진을 목표로 RPA를 도입했다. RPA는 Robotics Process Automation의 약자로 업무 프로세스를 자동화해 로봇이 그 일을 대신하는 솔루션이다. 자동차 생산 공정에서 보던 로봇 팔은 실체적인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라면 RPA는 PC에서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것이다.
재직 중인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을 때만 해도 전산팀이 자체개발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개발경력과 포트폴리오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보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물론 모든 회사 시스템을 자체개발을 하진 않았지만 업력과 자회사 및 본사 간의 시스템 연계로 인해 사내 시스템 대다수를 자체개발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 시스템에 대해서 프로세스 개선이나 변경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면 업무 담당자와 미팅에서 개선점이나 변경점에 대해 협의를 하게 된다. 구현은 가능한지, 리스크는 없는지가 대게 회의의 주된 내용이다. 몇몇 담당자들과 미팅을 하고 나면 기분이 조금 참담해진다. 담당자도 본인이 담당하는 업무의 프로세스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업무가 간단해지기만을 원한다.
마치 로봇이랑 다를 게 없다. 자신이 하는 전산 업무가 왜 이 필드에 데이터를 넣어야 하는지, 왜 이 프로그램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하나도 없다. 어떻게 업무를 진행하냐라고 묻는다면 담당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거를 클릭하고 여기에 이 글자를 넣고 이거를 클릭하고 이 데이터가 표시되면 이거를 클릭해요."
로봇이랑 다를게 뭘까. 업무를 진행하다가 남기는 문의 사항도 이와 비슷하다.
"여기에 숫자가 입력이 안 돼요."
자회사로부터 데이터 수신이 안된 항목이 있다면 숫자를 못 넣게 막아놨는데 데이터의 유무도 확인하지 않고 검토도 하지 않고 그냥 하던 대로 손만 움직이는 것이다. 문제는 담당자 변경 시 인수인계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담당자가 바뀌면 다시 처음부터 설명해줘야 하는 것은 IT 담당자의 몫이다.
물론 본인이 하는 업무에 항상 의문을 가지고 이해하고 진행하고자 하는 담당자도 있다. 그런 담당자와 일을 하게 되면 한결 편하다. 업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사전 설명이 필요 없고 왜 안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대화가 되며 대안을 찾기에도 수월하다. 실무를 하는 업무 담당자만 알고 있는 부분에서 개선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류에 대한 문의가 와도 프로세스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포인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적어도 왜 안되냐고 물어보면 '그냥 안 돼요'라는 말은 안 하니까.
이 글의 부제를 불편한 주제로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다. 하지만 자동차 생산 공장의 로봇처럼 RPA도 이제 그들의 업무를 점차적으로 대신할 것이다. 하지만 속도는 훨씬 빠를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미래에 있어서 내가 불필요의 대상이 되지 않을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차례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더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RPA라는 솔루션을 처음 접해보고 첫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나름 재미있다. 어릴 때 매크로 배울 때 기분이다. 좌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미지 검색, 이미지가 불분명할 때 기준 객체 선정 등 알고리즘 도식화하여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데 개발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8년 만에 새로운 솔루션을 접해보니 교육도 재밌고 모든 게 새롭다. 다음 글에서는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