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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Mar 27. 2022

지금은 공룡 시대

너희들 또 나왔니?

  요즘 우리 집 거실에 매일 출몰하는 녀석들이 있다. 출몰했다가 사라지면 좋겠는데 거의 상주하는 수준이다. 그것은 바로 레고 공룡들이다. 인도미누스렉스, 인도렙터, 카르노타우르스, 안킬로사우르스, 바리오닉스, 티라노사우르스, 프테라노돈... 등등.


  한참을 안 보이더니 오랜만에 나왔다. 이제 한동안 우리 집 거실 한쪽은 공룡들 차지가 될 이다.


  이쯤 되면 우리 집에 어린 꼬마가 있는 줄 아시겠지만 이미 여러 번 브런치에도 썼듯이 우리 집에는 엄마인 나보다 10cm 이상은 훨씬 더 큰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있다. 스마트폰이 없어서인지 아들은 여전히 장난감들을 좋아한다.


  아들에겐 주기가 있다. 여러 장난감들을 한꺼번에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난감을 한참 가지고 놀다가 싹 치워놓고 다른 장난감을 꺼내 또 한참을 가지고 노는 식이다.


  이 공룡들이 다시 출몰한 건 며칠 전이다. 그 전에는 큐브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유희왕 카드에 빠져 있었고, 그보다 더 전에는 스펀지 총 쏘기에 빠져 있었다. 물론 중학생이다 보니 학원 스케줄 등으로 바빠 온전히 놀 시간은 거의 없다. 공부하다 머리 식힐 때, 주말에 주로 논다.


  이 공룡들이 충분히 우리 집 거실을 들쑤신 후에는 아마 큐브나 유희왕 카드들이 슬그머니 등장해서 거실 어디엔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솔직히 나로서는 저 레고 공룡들이 탐탁지 않다. 일단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지나치게 비싸다. 내 눈엔 그냥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일뿐인데 가격이 너무 바가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들 앞에서는 그렇게 신랄한 비판이나 평가절하는 삼간다. 아들이 아끼는 것들인데 내가 별 관심이  없다고 해서 깎아내리는 것은 너무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다. 선물로 사 준 것도 있지만 아들이 직접 용돈을 모아 산 것들도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레고뿐이랴. 큐브도 엄청 많은데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큐브가 가격 차이가 엄청나게 난다. 아들 말로는 비싼 큐브는 확실히 돌릴 때 느낌이 부드럽고 다르다고 한다. 기록도 훨씬 단축된다나. 큐브에 점점 맛을 들이더니 갈수록 비싼 큐브들을 사 모았다.


  유희왕 카드는 집에 도대체 몇 장이나 존재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아들도 아마 정확히는 모를 것이다.) 알게 되면 기분만 안 좋아질 수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겠다. 스펀지 총도 아들 친구들이 놀러 오면 모두 다 함께 전쟁에 참여하고도 넉넉할 수준이다.


  아이들 장난감만큼이나 가성비가 떨어지는 물건이 또 있을까 싶다. 비싸게 사도 잘 고장 나고, 유행이 지나거나 흥미가 사라지면 시들해지기 마련 아닌가. 사면서 제일 돈 아깝다고 여겨지는 것이 장난감인 것 같다. 정말 내 눈엔 그냥 예쁜 플라스틱, 혹은 컬러풀한 종잇조각일뿐인데 말이다.




  중학생이 아직까지 장난감을 좋아하냐고 신기해하는 분들이 많다. 아들 친구들도 집에 장난감 같은 건 하나도 없는 아이들이 꽤 된다고 한다. 아들 친구들은 집에서 시간이 날 때는 보통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우리 아들은 평소 게임은 일주일에 한 번, 태블릿을 이용해 주말에만 한다. 그것도 1시간에서 길어야 1시간 30분 정도이다. 남편도 나도 전혀 게임을 안 하고, 아들도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만족해한다.


  거실에 널린 레고 공룡들을 보면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들을 스마트폰이나 게임에 뺏기는 것보다는 낫지... 하는 마음에 한껏 너그러워진다.




  "엄마~~~"


  아들이 레고 공룡들을 꺼내 놓고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온다. 이미 경험한 학습 효과로 인해 나는 이것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눈치챈다. 그렇다. 아들은 또 사고 싶은 레고가 있는 것이다.   

 

  이럴 땐 그냥 조용히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야기를 일단 듣다 보면 나는 또 귀가 얇아지거나 아들의 능수능란한 수법에 홀딱 넘어가 버릴 것이 거의 확실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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