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집 거실에 매일 출몰하는 녀석들이 있다. 출몰했다가 사라지면 좋겠는데 거의 상주하는 수준이다. 그것은 바로 레고 공룡들이다. 인도미누스렉스, 인도렙터, 카르노타우르스, 안킬로사우르스, 바리오닉스, 티라노사우르스, 프테라노돈... 등등.
한참을 안 보이더니 오랜만에 나왔다. 이제 한동안 우리 집 거실 한쪽은 공룡들 차지가 될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 집에 어린 꼬마가 있는 줄 아시겠지만 이미 여러 번 브런치에도 썼듯이 우리 집에는 엄마인 나보다 10cm 이상은 훨씬 더 큰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있다. 스마트폰이 없어서인지 아들은 여전히 장난감들을 좋아한다.
아들에겐 주기가 있다. 여러 장난감들을 한꺼번에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난감을 한참 가지고 놀다가 싹 치워놓고 다른 장난감을 꺼내 또 한참을 가지고 노는 식이다.
이 공룡들이 다시 출몰한 건 며칠 전이다. 그 전에는 큐브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유희왕 카드에 빠져 있었고, 그보다 더 전에는 스펀지 총 쏘기에 빠져 있었다. 물론 중학생이다 보니 학원 스케줄 등으로 바빠 온전히 놀 시간은 거의 없다. 공부하다 머리 식힐 때, 주말에 주로 논다.
이 공룡들이 충분히 우리 집 거실을 들쑤신 후에는 아마 큐브나 유희왕 카드들이 슬그머니 등장해서 거실 어디엔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솔직히 나로서는 저 레고 공룡들이 탐탁지 않다. 일단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지나치게 비싸다.내 눈엔 그냥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일뿐인데 가격이 너무 바가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들 앞에서는 그렇게 신랄한 비판이나 평가절하는 삼간다. 아들이 아끼는 것들인데 내가 별 관심이 없다고 해서 깎아내리는 것은 너무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다. 선물로 사 준 것도 있지만 아들이 직접 용돈을 모아 산 것들도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레고뿐이랴. 큐브도 엄청 많은데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큐브가 가격 차이가 엄청나게 난다. 아들 말로는 비싼 큐브는 확실히 돌릴 때 느낌이 부드럽고 다르다고 한다. 기록도 훨씬 단축된다나. 큐브에 점점 맛을 들이더니 갈수록 비싼 큐브들을 사 모았다.
유희왕 카드는 집에 도대체 몇 장이나 존재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아들도 아마 정확히는 모를 것이다.) 알게 되면 기분만 안 좋아질 수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겠다. 스펀지 총도 아들 친구들이 놀러 오면 모두 다 함께 전쟁에 참여하고도 넉넉할 수준이다.
아이들 장난감만큼이나 가성비가 떨어지는 물건이 또 있을까 싶다. 비싸게 사도 잘 고장 나고, 유행이 지나거나 흥미가 사라지면 시들해지기 마련 아닌가. 사면서 제일 돈 아깝다고 여겨지는 것이 장난감인 것 같다. 정말 내 눈엔 그냥예쁜플라스틱, 혹은 컬러풀한종잇조각일뿐인데 말이다.
중학생이 아직까지 장난감을 좋아하냐고 신기해하는 분들이 많다. 아들 친구들도 집에 장난감 같은 건 하나도 없는 아이들이 꽤 된다고 한다. 아들 친구들은 집에서 시간이 날 때는 보통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우리 아들은 평소 게임은 일주일에 한 번, 태블릿을 이용해 주말에만 한다. 그것도 1시간에서 길어야 1시간 30분 정도이다. 남편도 나도 전혀 게임을 안 하고, 아들도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만족해한다.
거실에 널린 레고 공룡들을 보면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들을 스마트폰이나 게임에 뺏기는 것보다는 낫지... 하는 마음에 한껏 너그러워진다.
"엄마~~~"
아들이 레고 공룡들을 꺼내 놓고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온다. 이미 경험한 학습 효과로 인해 나는 이것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눈치챈다. 그렇다. 아들은 또 사고 싶은 레고가 있는 것이다.
이럴 땐 그냥 조용히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야기를 일단 듣다 보면 나는 또 귀가 얇아지거나 아들의 능수능란한 수법에 홀딱 넘어가 버릴 것이 거의 확실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