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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Apr 12. 2023

'호랑이'보다 무서운 '아기' 효과

초등 한국어 학급 이야기

올해에도 나는 여전히 매일 오전 초등학교에서 다문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대상 학년은 1, 2학년 꼬맹이들이다.


현재 우리 반에는 모두 1학년 학생들만 있다. K국에서 온 '관심이', S국에서 온 '찡찡이', U국에서 온 '깜찍이', I국에서 온 '라푼젤'.


관심이와 찡찡이는 남학생들이고 깜찍이와 라푼젤은 여학생들이다.


관심이는 K국에서 온 학생인데 그 나라 사람들이 공용어로 쓰는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고,  모국어인 K어도 거의 할 줄 모른단다. 한국어야 말할 것도 없고. 즉, 어떤 언어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ADHD의 성향도 가지고 있어서 수업 시간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이 학생의 별명이 '관심이'인 이유다. 끝없이 관심을 가지고 봐 줘야 한다.


찡찡이는 갈색 곱슬머리, 하얀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친구다. 이 학생은 한국말이 상당히 유창하다. 높임말도 잘 쓴다. 그런데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 '문맹'인 것이다. 수업 시간에 쓰기 과제를 주면 '선생님, 너무 많아요.', '힘들어요. 못하겠어요.'를 연발해서 '찡찡이'라고 지었다. 특기는 고자질이다.


깜찍이는 U국에서 온 작고 귀여운 여학생이다. 정말 깜찍하게 생겼고, 김치를 사랑한다. "김치, 맛있지!"를 매일 말할 정도니까. 그런데 성격은 조금 소심하다. 틀릴까 봐 걱정하는 모습도 있고, 잘해서 칭찬을 받으면 얼굴 한가득 웃음꽃이 핀다. 열심히 공부하는데 학습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진도가 빠르지는 않다.


라푼젤은 머리가 엄청 길어서 '라푼젤'이라는 별명을 붙여 보았다. 머리를 하나로 묶어서 땋고 오는데 그 머리가 엉덩이 밑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 학생은 발음을 담당하는 기관의 문제로 인해 발음을 제대로 못한다. 담임 선생님께 들으니 모국어인 아랍어도 제대로 발음을 못한다고 한다. 모음은 그래도 좀 발음이 되는데 발음할 때 장애가 많이 발생하는 자음은 거의 제 소리를 못 낸다.




장황하게 학생들의 면면을 적어놓고 보니 내가 매일 만만치 않은 수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난다. 비록 4명밖에 안 되지만 이 학생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시너지(긍정적인 방향이 아닌 다른 쪽으로)' 효과는 대단하다.


특히 관심이 때문에 수업 분위기는 금세 자주 흐트러진다. 수업 시간에 제대로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할뿐더러 중얼중얼거리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관심이가 이렇게 한번 나서면 찡찡이가 불 난 집에 부채질을 한다. 관심이와 찡찡이가 장난을 치면 깜찍이는 화를 내고, 라푼젤은 어느 새 딴짓을 한다.  




2년째 1, 2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이 학생들이 학교 생활,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이 중에서 내가 어느 정도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은 학교 생활과 관련된 부분이다. 아주 상식적이면서도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1, 2학년 꼬맹이들에겐 쉽지 않은 미션이다.


이를 테면 화장실은 쉬는 시간에 가기(이 습관을 잡아주지 않으면 아무 때나 간다고 하고, 한 명이 가면 우르르 가고 싶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는 돌아다니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기, 쉬는 시간에 위험한 행동이나 장난하지 않기, 복도에서 소리 지르거나 뛰지 않기, 이동할 때는 한 줄로 줄 서기 등이다.


한국어강사로서 제일 신경이 쓰이고,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당연히 수업 시간과 관련된 것들이다. 엉덩이와 입이 한없이 가벼운 이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한다.




고민하다 생각해 낸 좋은 방법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내 맘대로 이름 붙인 '아기 작전'이다. 엄하게 꾸짖거나 무서운 얼굴로 쳐다보는 것보다 훨씬 효과를 보고 있는 방법이다.


누군가 수업에 방해되는 말이나 행동을 과하게 하면 혼을 내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 OO이는 1학년이 아니라 아기구나? 아기라서 그러는 거야?"라고 묻는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아이들도 '아기'라는 말은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사실 1학년이면 내 눈에는 귀여운 '아기'에 가깝긴 하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그 '아기'라는 말을 싫어한다. 자신들이 아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아기처럼 취급받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이다. 그 심리를 이용하면 꽤 쉽게 태도를 고칠 수 있다.


이렇게 말을 하면 금방 태도가 개선되는 듯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흐트러지게 된다. 그러면 그땐 칠판에 이름을 쓰고 그 옆에 아기 그림을 그려 놓는다. 문제 행동이 반복되면 그림을 추가하는데 자기 이름 옆에 아기 그림이 그려지면 아이들은 정말 태도가 확 좋아진다.


눈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아기' 그림이다. ^^;;


"열심히 잘하면 아기 그림은 지워줄 거야."


지우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집중력이 확 높아진다. 그러면 그 새를 놓칠 새라 칭찬을 해 준다. 칭찬할 때 진심을 담은 '엄지 척!'은 기본이다.


"와, 아까는 아기였는데 지금은 정말 의젓한 1학년이네! 너무 멋있다!"


칭찬과 함께 아기 그림이 지워지면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얼마나 웃게 되는지 모르겠다.


엄하고 무섭게 혼내는 것보다 이런 방법을 쓰면 나도 마음이 즐겁고, 학생들도 '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며 뿌듯함을 느낀다. 이 방법은 순수하고 맑은 1, 2학년에게 제일 잘 맞을 것 같지만, 중학년이나 고학년에도 상황에 따라 적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기 작전으로 입증된 학습 태도 개선 효과
1학년들은 연필 잡기조차 익숙하지가 않아 쓰기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쉬는 시간에 교사가 화장실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저학년 교실. 그러나 저학년들이기에 특히 더 사랑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관심이, 찡찡이, 깜찍이, 라푼젤... 때론 한숨도 나오지만 한 번의 웃음과 애교로 어느 새 나를 무장해제시켜 버리는 귀요미들이다.




1년 넘게 글을 쓰지 못했던 브런치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물론 개인적으로 많은 바쁜 일들이 있기도 했지만(사실 이것들도 다 글의 소재이지만 쓰려고 하니 다소 버겁다는 생각도 든다.), 근본적으로는 '게으름'과 '체력 부족' 때문이다. 이웃 작가님들의 글은 되도록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는데 내 글을 쓰는 것은 자꾸 미루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또 얼마 후에 글을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좀 더 부지런히 브런치에도 글을 쓰려고 한다.  


계속해서 꾸준하게 글을 쓰시는 작가님들이 정말 정말 대단하시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오랜만의 브런치 글나들이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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