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미 Dec 14. 2022

브런치에 대한 고민

갑자기 글을 쓰게 됐던 건 스위스로의 이사가 결정된 직후였어. 학교 다닐 땐 독후감으로 상도 받았었고, 나름 글쓰기 자신이 있었는데, 공대를 가고 엔지니어가 된 후로는 설계문서 말곤 글 쓸 일이 전혀 없었어. 어쩜 평생 한국어로 글 쓰는 방법을 더 배워볼 기회조차 없겠단 생각이 들어서 이사 준비로 바쁜 가운데 한겨레 교육원의 에세이 쓰기 수업에 등록했어. 교육원에 다니는 8주 동안 매주 에세이 한편을 숙제로 써갔고 교실에서 낭독했어.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게 좋아서 글을 계속 쓰기로 했어.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고 몇 번의 계절이 오고 갔어. 학원 숙제로 썼던 글들로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요즘은 매일 너에게 쓰는 엽서를 브런치에도 올리고 있어. 묵묵히 써나가자 생각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글 쓰는 게 좀 막막하기도 해.


문제는 쓸 얘기가 없다는 거야. 교육원에 다닐 땐 선생님이 어떤 글을 써와야 할지 말해주셨어. “기억에 남는 추억의 장소”라던가 “자랑하고 싶은 경험”이라던가. 당연히 지금은 아무도 내게 뭘 쓰라고 요구하지 않아. 내 안에서 하고 싶은 말 그리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 말을 골라내야 해. 바로 그게 문제야.


브런치엔 에세이가 제일 많아. 그중에서도 직업의 세계를 다룬 업세이가 많고, 드라마틱한 개인사를 담은 이야기도 많아. 하지만 나는 이 두 가지 모두에서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어. ‘빅 테크 기업의 유럽본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의 업세이’를 간판으로 달까, 잠시 고민했지만, 또 회사 이름을 팔아먹어야 하는 게 자존심 상했어. 그렇다고 나한테 드라마틱한 개인사가 있는 것도 아니야. 해외생활이 좀 특이할까 싶기도 했는데, 그냥 출근하고 퇴근하는 심심한 직장인의 일상이 이어질 뿐이야.


자신 있고 즐거워서 시작한  쓰기였는데, 요즘은    모르겠어. 브런치 작가가   얼마  됐을  “ 글이 세상에 소음을 더하는 일이 아니길 바란다 얘기를 브런치에 올린  있었어.  글은 내가 브런치에 올릴 93번째 글이  거야. 혹시  글, 너와 나사이에서만 읽혀도 충분했던  아닐까? 93번째 소음을  브런치에 더하  아닐까? 브런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야.


2022.12.13. 밤에, 유미가.



매거진의 이전글 실패에서 벗어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