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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미 Dec 15. 2022

라디에이터와 함께하는 한파

이번 주 취리히의 최저기온은 영하 9도야. 바깥 온도가 영하 십도 가까이 떨어지는 건 강원도 출신인 나에게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집에 보일러가 없다는 거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창문마다 아래에 중앙난방 라디에이터가 있어. 아파트 입주민끼리 합의한 실내온도 22도만큼 라디에이터는 늘 따끈해져 있지만 방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집안에 훈훈한 느낌이 없어. 당연히 바닥에 앉아있는 건 생각할 수 없고, 늘 실내화를 신지만 그래도 발가락이 조금 시려.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 한 채로 실내화 없이 바닥을 디디면 깜짝 놀라 잠이 달아나기도 해.


서울의 오피스텔에 살 땐 호사스럽게 겨울을 보냈어. 보일러 실내온도 28도, 가습기 습도는 40도로 맞추고 말이야. 보일러를 외출로 돌리고 나갔다 와도, 해가 잘 들어서 그런지, 집에 들어서면 훈훈한 공기가 뺨을 감싸곤 했어.


1월에 서울 가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치즈 떡볶이도  먹고 싶고, 쇼핑도 하고 싶고, 아이돌 생일 이벤트도 가고 싶어.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건, 따끈한 방바닥에 드러누워 귤 까먹는 거야. 어떤 것들은 공기와 같아서 잃어버리고 나서야 소중함을 안다고 하지. 따끈한 방바닥이 내겐 그래.


2022.12.14. 겨울비 내리는 취리히에서 유미가


창문 아래 라디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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