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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조각보 Feb 21. 2023

이제 다 잊었으면 좋겠다.



남편을 떠나보낸 지 햇수로 14년째에 접어든다. 내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나도 젊었지만 그도 젊었었다. 그 사람의 시간은 멈추고 내 시간만 지나가는 이상한 시절을 보내면서 나보다 여섯 살 위였던 그 사람보다 열 살쯤 더 많은 내가 되었다.  글쎄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


부모와 이십오 년, 남편과 함께 이십오 년을 살았다. 이제 나 혼자 이십오 년이라는 공평한 시간을 살았으면 한다. 세상살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알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 그만 다 잊었으면 좋겠다.






빈 집의 오후 

                             경자의 보따리

빈 집에, 우리 흔적은
발효된 세월 냄새만을 남기고
서성대며 잊으려던 기억 크기만큼
뒷마당 담쟁이만 저리 혼자 커버렸다
    
그때처럼
실뱀 같은 가을 햇살 한줄기
무심히 마루 위에 내려앉고, 나는
전설인 듯 아득하게
살아남은 기억 몇 개
성한 곳 없는 빈 집 모퉁이에서 또 찾아낸다     

아직도 나는
뿌리 되지 못한 옥수수 세 번째 마디처럼
어쩔 줄 모르는 채
남아있는 것들 안으로 삭히며
빈 가을 들판처럼 비어 가는데   

개망초, 강아지 풀, 질경이
빈 집에 남아있는 부질없는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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