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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조각보 Jan 04. 2023

과거의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




요즘 부쩍 잠 못 드는 날이 잦아지고 길어진다. 그때마다  어릴 적 그 작은 골방이, 밖에서 들리던 엄마의 끊임없던 잔소리가, 아무 희망도 꿈도 가지지 못한 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마약에라도 취한 듯 몽롱했던 어린 내 하루가 생각난다. 잊고 싶은 기억이 불면을 부르는 것인지, 잠이 안 오기 때문에 옛날 기억이 떠오르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제 그만 잊고 싶은 다짐도 다 소용없이 아주 작은 꼬투리에도 기억의 스위치가 켜지곤 한다.


며칠 전 차 의 라디오에서 'SMOKIE'의 노래가 나왔다. 'Living Next Door to Alice'라는 스모키의 대표곡이었다. 어릴 적 많이 듣던 노래였다. 오랜만에 듣는 노래가, 너무 익숙해서 코끝이 아리면서 가슴이 뻐근해졌다. 다시 한번 과거의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이었다. 마치 얼마 전의 일이었던 것처럼..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내 잘못은 아니었으나 창피했다. 국민학교 내내 외톨이였으니 당연히 친구도 없었다. 나는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돈이 생겨 이백 원이면 살 수 있던 '삼중당문고' 책을 사러 서점에 갈 때나 밖에 나갔다. 집은 역에서 가까웠고 서점은 역광장의 건너편에 있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책꽂이에 꽂힌 문고판 책중에 되도록 두꺼운 것을 기준으로 골랐다. 오래 읽으려는 생각이었다. 이광수의 무정이나 흙, 최인훈의 광장, 박경리, 김승옥의 한국 소설이나, 김동인, 염상섭, 현진건의 단편들도 읽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까뮈의 작품들도 그때 그 이백 원짜리 손바닥 만한 삼중당문고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사서 집에 올 때면 '태극당'이라는 빵집에도 들렀다. 천안 명물이라는 '호두과자'가 유명한 집이지만 나는 소금과 후추를 넣고 볶은 당근과 양파가 드문드문 박혀있는 '야채식빵'을 사기 위해서였다. 썰지 않은 커다란 식빵을 손으로 뜯어먹는 것을 나는 좋아했다. 부드러운 식빵의 속살에서 풍기는 볶은 양파의 향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이백 원짜리 책 한 권과 식빵 하나를 사들고 오서 설레던 기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카세트 라디오로 박원웅과 김광한, 김기덕이 진행하던 라디오 들었다. 그것은 오빠 것이어서 방송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내게 없었다. 하지만 허술하게 지어진 집의 구조 덕에 벽을 통해 소리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때 중학교 3학년이거나 고등학교 1학년쯤이던 오빠는'0시의 다이얼'이나 '밤을 잊은 그대에게''꿈과 음악사이'와 같은 심야방송을 자주 들었다. 오빠가 듣는 노래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팝송이 대부분이었다. 들리니까 그냥 듣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오빠는 'Olivia Newton-John''SMOKIE'를 좋아했다. 그들의 노래가 들어있는 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반복해서 들었다. 뜻을 모르던 내게도 그들의 노래가 익숙해졌다. 차에서 들은 노래는 그때 들었던  'Living Next Door to Alice'였던 것이다.



낮에 오빠가 학교 간 사이 카세트 라디오는 내 차지였지만, 오빠가 오기 전에 제 자리에 갖다 놓아야 했던 환경 탓인지 나는 노래를 많이 듣지 못했다. 송창식이나 이장희, 윤형주의 노래를 알고 있을 뿐이다. 그 후로는 '나 어떡해'를 시작으로'산울림'의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프로에 노래를 신청하는 엽서를 보낸 적도 있다. 엄마는 내게 '노래를 들어두 희한한 노래를 듣는다'라고 했다.


가끔 산울림의 노래가 생각난다. 그때의 노래들을 들으면 공연히 가슴이 따뜻해지다가 촉촉하게 슬퍼지기도 한다. 커피와 빵냄새를 풍기는 카페 앞을 지날 때처럼 노래는 향기처럼 기억된다. 



책도 마찬가지다. 내용이 난해한 것들이 수두룩했지만 그냥 읽었다는 것이 맞다. 그것이 아니면 할 일이 없었으니까 읽고 또 읽었다. 그나마 카세트라디오와 이백 원짜리 삼중당문고마저 없었다면, 내 10대는 손목 근처에 난 두 개의 사마귀를 교대로 쥐어뜯어 피를 내거나 쥐의 오줌으로 얼룩진 천장이나 쳐다보며 보냈을 수도 있었다. 끔찍하고 딱한 일이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산울림'의 노래를 들어 보았다.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아무래도 갱년기 사춘기 증상이 같은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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