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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서랍 Mar 28. 2023

내가 만약 치매를 앓는다면?





나를 미워하 엄마가 초기 치매 진단을 받은 지 1년이 지났다. 아직 남들이 알만큼 표가 나는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개념이 조금 없어지고, 옷을 철에 맞게 입지 못하고, 같은 물음을 되풀이하고, 저장강박처럼 무엇이든 버리지 않고 어딘가에 쑤셔 넣어두는 버릇이 생긴 것뿐이다. 검정비닐봉지, 물건을 묶어 온 끈, 코팅 벗겨진 프라이팬이나 냄비, 낡은 행주 따위의 사소한 것들에 애착을 갖는다. 그런데 근래에 이상한 행동이 추가되었다. 동생과 나는 너무나 익숙해서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엄마가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


그것은 일주일에 두어 번정도 때 안 가리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내게 전화를 걸고, 집에 동생이 있으면 동생을 앉혀놓고 한다. 짧게는 한 시간 남짓이고 길어지면 두어 시간을 그렇게 는데, 옛날 우리 어릴 적, 부엌 그릇들을 '뎅그렁'거리며 하던 신경질과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처럼 나를 미워하는 말을 안 하는 것이다.


"경자 쟤는 밉다 밉다 하니께 미운짓만 골라한다니께.  죽으믄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 내가 잔치라도 할꺼여~"






대부분 똑똑하고 이쁜 자신이 남편을 잘못 만나 고생만 하고 살았다는 자기 연민에 가득 찬 신세타령과 자식들에게 악담으로 들리는 말을 한다. 덕분에 요즘  엄마의 신경질과 더불어 의도치 않게 과거로 거슬러 가는 날이 잦다. 옛날처럼 불안하거나 무섭지는 않지만 가만히 들어주는 것 또한 환장할 노릇이다. '너두 기억나지?'라거나  '내 말 듣구 있니?'라면서 중간중간 동의를 구하거나 확인도 한다. 이렇게 사람 속을 뒤집어 놓고 나서 한숨 자고 나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치 술에 취한 사람이 주사를 부리는 것과 흡사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얼마나 야무졌는지, 동네 사람들이 내 꺼는 똥두 버리기 아깝다구 그랬어, 응? 그런디 어쩌믄 자식들은 하나같이 나를 안 닮아서는.. 쯧.. 내 팔자는 뭔 죄를 타구 났길래 사는 게 아직까지 이 모양인지 모르것다아~ 내가 지금까지 어뜨케 살었는지 니덜은 모르지? 능력읍는 느이 아부지 만나 얼마나 고생하고 살었는지 모를 꺼여~ 젊어서부터 참구 살어서 가슴에 홧병이 생겼는디 지금까지두 참구 살어야 하는 게 말이 된다니? 뭘 참냐구? 지금두 다 내가 할 소리 안 하구 참구사니께 느덜이 이정도루 사는겨~ 저 노인네 왜 안 죽나 하면서 나 얼른 죽기 바라지? 양심을 그따위로 쓰니께 나는 아주 오래 살껴! 내가 누굴위해 일찍 죽는다니? 니들이 진절머리를 내도록 내가 살꺼니께 각오하는 게 좋을껴~ 요양병원? 내가 왜 자식들 놔두고 거길 간다니? 거긴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는데 아니라더라~ 나는 끝끝내 니덜 옆에 붙어서 나만큼 고생시키다 죽을 거라니께? 니덜두 고생이란 걸 해봐야 내가 얼마나 고생하구 살었는지 조금이라두 알거아녀?"








내가 예전에 '노인요양원'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다. 치매를 앓는 어르신이 많았는데 치매에도 여러 가지 증상이 있다고 한다. 무언가 보따리에 잔뜩 넣어서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 자기 것을 누가 훔쳐갔다고 하는 사람,  듣기에 거북한 상스러운 욕을 하는 사람, 자꾸만 옷을 벗으려고 하는 사람, 똥을 싼 뒤 그것을 이곳저곳에 바르는 사람, 밥을 안 먹었다며 자꾸 밥 달라고 하는 사람, 물론 조용히 배회하거나 혼자 중얼거리기만 하는 얌전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족들의 말을 들어보면 치매를 앓기 전에는 그런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결같이 말한단다. 지나치게 깔끔했던 사람이 오히려 똥을 싸서 이곳저곳에 바르고, 욕은 커녕 상스러운 말 한마디 안 하던 사람이 저런 욕을 어떻게 배워서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욕을 하고, 속옷이 보이도록 옷을 자꾸 벗는 사람도 평생을 조신하게 살아온 분이라며 오히려 그런 행동에 가족들이 더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따리를 싸서 나가려 하는 분은 아마도 젊은 시절 바깥생활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평소에 이성(理性)이 막고 있던 감정들이 치매로 이성의 끈을 놓는 순간 참았던 본성(本性)이 살아나서 하는 행동이 아닌가 싶다고 요양보호사들 나름의 분석을 하고 있었다.


물론 증명된 의학적인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요양보호소에서 치매어르신을 돌보는 일을 하는 '요양보호사'들의 말이니까. 하지만 나름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엄마의 행동을 분석하자면 어릴 때 내게 했던 악담과 학대는 충만한 자기애를 충족하지 못한 스트레스였을 수 있다. 엄마는 '자기 연민'에 평생 진심이었던 것이다. 이럴 때 정말 불쌍한 피해자는 가 아닌  엄마가 되는 걸까?






내가 만약에 치매에 걸리게 되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할까 상상했다. 평소 깔끔하지 않았으니 이곳저곳에 똥을 바르지는 않겠구나 싶고, 가진 것이 많지 않았으니 누군가 내 것을 훔쳐갔다고 하지는 않겠지 싶다. 하지만 후회와 나쁜 기억으로 가득 찬 삶이었으니 욕을 할지도 모르겠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으니 보따리를 싸서 나가려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목소리 좋고 손 큰 남자를 보면 주책없이 좋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절로 다.


치매는 물론 누구나 안 걸리고 싶어 한다.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치매를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으로 꼽는다. 급속한 고령화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치매 유병률은 불행하게도 계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니, 나는 예외겠지 하는 생각은 사치일 수 있다.


혹시, 내가 치매에 걸리면 나를 미워하거나 요양원에 보내는 것에 자식들이 죄책감을 덜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처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그럼 가슴 아 일도 없을 테니까.  


상담을 다니는 병원 의사 선생님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을 미리 사서 걱정하는 것이 병'이라고 하신 적 있다. 맞다. 엄마처럼 늙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할 일 없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가 지금 앓고 있는 부질없이 깊은 병이다.




사진출처: 서울아산병원 메디컬 칼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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