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뒤돌아보니 나는 버려야 할 것이 참 많다. 이제 비로소 철이 드는 것이거나 아니면 하나둘씩 버려야 하는 나이가 된 까닭인지도 모른다.
사실 버려야 하는 것은 사진이나, 일기장, 옷이나 손 때 묻은 살림살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열등감'이야말로 내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열등감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처지, 신분, 학식 따위가 다른 사람보다 낮고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마음가짐'이다. 나의 경우는 여기에 '외모'를 더한다.
내 열등감의 뿌리는 엄마로부터 온 것이 틀림없다. 항상 나를 못나고 쓸모없는 자식이니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고 어린 나는 소심한 반항 한 번 못하게 무력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릴 적 성장환경이 어른이 된 후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큰 단점 세 가지 중 첫 번 째는, 나의 약점을 과장되게 의식하고 상처받는 것이다. 두 번 째는,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 번 째는, 과거를 끊임없이 떠올리며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의 글 12화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중에서
나는 많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반대로 자존감은 너무 없었다. 무능하고, 잘하는 것이나 매력이라곤 전혀 없이 나이만 많을 뿐인 그런 사람으로 남들에게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나를 매사에 당당하지 못하게 했다. 초등학교를 겨우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 말과 행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편견을 가질까 두려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내 의견이나 제안이 거절되거나 비난, 또는 인정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 때문에 조별과제처럼 함께 하는 작업에서는 의견이 달라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또한, 그런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대인관계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선을 그었다. 나잇값을 해야 한다거나 어른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도 심했다. 그런 것이 티 날까 봐 또다시 전전긍긍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나에 대한 개념도 약해서 나는 도대체 어느 때 행복하고 즐거운지, 어떤 때 화가 나고 슬프고 외로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성취하려고 하는 것과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늘 불완전한 사람이었다. 스무 살 아이들도 다 아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것처럼 소외된 느낌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럴 필요 없어, 난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최면을 걸듯 다독이며 힘을 내보지만 의식적으로 그러는 건 오래가지 않았다. 금세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내가 쓴 글 중에서 나를 가장 잘 나타냈다고 생각되는 글이다. 이렇게 나를 잘 알고 있고 이러한 것들을 간절하게 버리고 바꿔보려노력하는데왜 그렇게 안되는지알 수 가없다.잠이 안 오는 밤이면 후회와 반성을 하면서 밤새 부질없는 논문 한 편쯤 완성할 만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공자는 논어 위정 편(爲政篇)에서 40세를 불혹(不惑)이라 해서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고 했다. 50은 지천명(知天命)으로 '하늘의 뜻을 알았다'라고 했다. 나는 '이해심과 포용력이 생겨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마음의 거스름 없이 들어줄 수 있는 나이'라고 했던 이순(耳順)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하찮은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이르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도 흔들리며 산다.
지금도 끊임없이 잘난 누군가와 비교하며 절망하고 그들을 질투한다. 어릴 적 엄마가 내게 그러지 않았다면, 그런 어린 시절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살았다면, 어쩌면 내가 지금쯤 그들이 되어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헛된 망상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내가 버려야 하는 것 중 일 순위는 '열등감'도 '과거의 기억'도 '상처'도 아닌 내가 지금도 꾸고 있는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