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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서랍 Sep 28. 2023

나는 사실 '엄마교'의 광신도였다.





'아는 것이 힘이다''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서로 상반되는 의미의 말이다. 내게는 정말 아는 것이 힘이었을까 모르는 것이 약이었을까?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과거의 일에 매어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도 과거의 후회되는 많은 부분을 엄마 탓을 하면서 징징대고 있다. 그것이 지금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이제라도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면서도 너무 늦은 것 같은 후회와 되돌리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엄마 탓'이라도 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껏


엄마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온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열등감과 수치심을 가진 채 자존감이라고는 없이 살았고 미숙한 대인관계는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어렵게 했다. 엄마는 나를 양육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니까 그저 어른이 되었을 뿐이라고 말할 만큼 거의 방임 수준이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고 가난했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사실 가르치려는 의지가 없었다. 같이 자란 오빠나 동생과도 오랫동안 형제애라고는 없는 불편한 관계였다. '오빠'라는 단어는 남들에게 소개할 때나 입에 올렸었고 동생에게 '언니'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나와 친밀하게 지낸다는 것은 곧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엄마 눈에 거슬리는 일이었다. 아무도 나와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았다. 변변한 대화 해보지 못한 채 한 집에 사는 가족들과도 물과 기름처럼 겉돌며 외면당했었다.



가끔 나와 비슷하게 부모의 학대와 방임의 환경에 있던 사람들은 '결혼하면 내 아이들에게 우리 엄마와 다르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또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보니 '이렇게 내 새끼가 예쁜데 우리 부모는 내게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모의 부당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모와 다른 가치관으로 현명하게 남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 그만큼 어리석었다.


그렇게 내게 가혹하게 했어도 나는 엄마 편이었다. 아니, 내게 가혹했다는 생각도 안 했다. 그저 어떻게든 노력해서 마음에 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칭찬도 듣고 인정도 받고 싶었다. 나는 늘 엄마에게 일편단심이었다. 결혼도 내게 '독립'이 되지 못했다.



지금 나는..



예전에도 그랬고 늙고 병든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괴팍하고 못되게 구엄마를 주제로 대부분의 글을 쓴다. 이제 겨우 나의  잘못과 엄마의 실체에 눈을 떠서 그렇다. 이렇게라도 엄마 탓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까닭이다.


나는 사실 우리 엄마가 교주인 '엄마교'라는 일종의 사이비교에 푹 빠진 '광신도'로 지금껏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세상 안에서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것이다.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른도, 마흔도, 쉰도 그렇게 넘겼다. 남들은 인생에 경륜이 쌓여 사려와 판단이 성숙해진다는 나이 예순이 다되고 나서야 겨우 오래되고 익숙한 엄마와 나만 살던 세상에서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렇게 얼추 늙어 새로 마주한 세상은 온통 후회로 가득하다. 엄마에게 배운 대로 살아온 과거의 일이 지금까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내가 그런 헛된 시간을 길게 살아온 것이 억울하고 분하기만 하다. 엄마는 엄마대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충실한 신도 하나가 예전 같은 믿음으로 자신을 대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결혼하고도 엄마는 생활비가 부족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아버지를 내세워 전화를 했다. 미안하다고 시작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나면서도 엄마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남편 모르게 경제관념 없는 엄마 빚을 갚아주기도 하고, 길게 운영하지 못했지만 식당을 차려주기도 했다. 시장에서 엄마의 빚쟁이에게 딸이니 대신 갚으라는 악다구니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은 무서운 것이다. 나는 엄마가 내게 했던 것처럼 내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대하기 일쑤였고, 남편에게도 우리 엄마가 아버지에게 한 것처럼, 보고 배운 그대로의 을 재현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내가 예전 엄마와 똑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못했다. 생각했다면 달라졌을까?  엄마는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내 삶 속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건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 엄마에게, 아버지가 해주지 못했던 것까지 보상해줘야 한다고 느꼈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고, 좋아할 만한 영화를 함께 보고, 새 옷을 사주고, 집안의 가구도 바꿔주면서 행복하게 해 주려 최선을 다했다.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는 거짓말을 하고,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 쓰면서 당당하게 이것저것 원하는 것이 많아 때로 지치고 힘들었어도 다 받아주었다. 이제 늙었고 아프기까지 하니 내가 더 잘는 딸이 되어야 했다. 나는 엄마의 아바타였고 불과 얼마 전까지 그렇게 살았다. 나는 엄마에게 받았던 부당한 대우와는 별개로 완전한 엄마 편이었다. 


아!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안 해도 되는 거였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엄마가 하듯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너무 늦어버렸다




이제 남편은 먼저 떠나버렸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엄마에게 쏟았던 시간과 정성과 이해와 에너지를 남편과 아이들에게 주었어야 했다. 가 엄마처럼 하고 있다는 것과 마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되돌릴 수 없을 때가 되어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 인생 전체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마음 아프다. 나는 왜 엄마와 똑같이 살았을까? 어쩌자고 그랬을까?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인 걸까?



지금 내가 엄마를 알아버린 것처럼 어른이 된 아이들이 나에 대해 알아버리면 어쩌나..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이 학습이 되어 아이들도 나와 똑같이 살면 어쩌나..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나처럼 뒤늦은 후회를 하면 어쩌나.. 우리 엄마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나와 똑같은 의문을 가지면서 지금 내가 엄마를 원망하는 것처럼 나를 원망하면 어쩌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를 불안하고 무섭게 한다. 되돌릴 수 없이 다 지나간 이제 와서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한마디 말이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차라리..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끝까지 엄마 편이었더라면, 지금도 엄마에게 충성을 다 하면서 엄마와 함께 해맑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싶다. 그랬으면 한 십 년쯤 후에 '나는 이제 늙었으니 너희들이 잘해야 하는 거야!'라고 아들들에게 지금 우리 엄마처럼 큰소리 뻥뻥 치면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엄마를 보며 나의 앞날을 상상하는 것은 내게 거의 공포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엄마  내가 살아온 시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약'인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


온통 후회로 저무는 하루를 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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