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옷가게
어릴 적에 '옷감장수'라 불리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머리에는 늘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있었다. 그 보따리 안에는 여러 용도의 갖은 옷감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나름 최신 유행한다는 한복감이 대부분이었지만 옥양목 홑청이나, 이불 겉감으로 쓰이던 색이 고운 공단 같은 원단도 있었다.
나이는 50대 후반쯤 되었을까? 아니 60대 초반일 수도 있다. 키가 작았고 머리는 숱이 없어 머리밑이 다 드러났었다. 그렇게 숱 없는 머리를 참빗으로 가지런히 가운데로 모아 빗어 은비녀를 꽂아 쪽을 찌었는데 비녀가 꽂힐 만큼의 숱이 아니어서인지 헝겊을 머리처럼 땋아 머리와 함께 비녀를 꽂았던 것이 기억난다. 옷은 언제나 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 머리숱이 없었던 이유는 자기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보따리를 머리에 매일 이고 다녀서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네에는 보름에 한 번쯤 왔다. 아마도 여기저기 나름대로 다니는 동네 순서가 정해저 있는 모양이었다. 한 번 오면 한나절씩 머물다 가곤 했다. 마루가 넓은 집 한 귀퉁이에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자연스레 애들을 시켜 '옷감아주머니'오셨으니 구경 오라고 이 집 저 집 심부름을 시켰다. 새로운 옷감을 보기 위해 모여든 아주머니들은 보따리를 다 풀어헤쳤다. 외상으로 거래를 하기도 했다. 가지고 다니는 작은 수첩에는 외상값을 갚으면 볼펜으로 가로줄을 '찍' 그어서 외상거래 종료를 표시했다. 끼니때가 되면 보따리를 푼 집에서 밥을 해서 함께 먹었다. 어떤 때는 부침개를 해 먹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방해가 된다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지만 나는 여러 가지 질감이 다른 색색의 옷감이 신기하고 예뻐서 엄마들처럼 가까이에서 구경하며 만져보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소풍이나 졸업식 같은 행사가 있으면 엄마들이 한복을 주로 입었었다.
차곡차곡 쌓인 옷감 보따리는 생각보다 무거워서 그 보따리를 다시 머리에 일 때는 아주머니 둘이 마주 잡아 들어서 머리에 이어 주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옷감만 가지고 다니던 아주머니가 나중에는 옷도 가지고 다니면서 팔았다. 부피는 컸지만 무게는 옷감보다 훨씬 가벼워서 이고 다니기 수월하기도 하고 수입도 더 낫다고 했다. 손질이나 보관도 어렵고 입었을 때 불편한 한복에서 차츰 간편한 옷으로 문화가 바뀌는 때이기도 했다.
동생 경미가 국민학교 1학년 봄소풍 가서 찍은 사진이다. 엄마는 '옷감장수'아주머니에게 산 옷감으로 만든 한복을 입었다. 오래된 흑백사진이라 보이지 않지만 연한 분홍바탕에 작게 반짝거리는 무늬가 있다. 소풍날 입을 거라는 말에, 새로 나온 원단인 데다 봄에 잘 어울릴 거라며 보따리 아래쪽에서 꺼내 추천한 것이다. 그날 나도 옆에 있었다. 찬합과 물병을 싸 온 밤색과 베이지색 바둑무늬 면보자기도 그날 자투리천을 서비스로 받은 것이다.
동생이 입은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와 치마는 소풍 때 입으라고 동생 몫으로 새로 사주었다.
"물려줄 동생두 없는디 딱 맞어야 한 철 이쁘게 입을 거 아닌감?"
마르고 볼품없어서 옷태가 안 난다면서도 오래 입으라고 내겐 늘 큰 옷만 사주던 엄마가 동생옷을 살 때 한 말이었다. 나는 내색도 못하고 한동안 서러워서 삐져있었다.
나는 너무 말라서 고무줄바지 허리가 헐렁할 정도였고 엄마에게 미움을 받으면서도 키는 왜 그리 잘 크는지 해마다 바짓단을 손가락 마디만큼씩 늘여 입어야 했었다. 가난한 데다 미움까지 받고 있었으니 먹는 것은 물론 철 따라 입는 것도 제대로 챙겨줄 리 없었다. 나는 항상 '단벌신사'였다. 어느 날 그 보따리 아주머니에게서 엄마가 바지를 하나 사 주었다. 아동복을 팔지는 않았으니 그 옷은 아마도 어른용이었을 것이다.
내 옷이었지만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새로 산 바지는 허리가 고무줄이었고 무릎을 살짝 덮는 기장이었다. 그리고 통이 넓었는데 치마처럼은 안 보이는 어정쩡한 넓이였다. 화려하고 커다란 꽃무늬가 바지에 가득했다. 나는 할머니들이 입는 바지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음날부터 매일 그 바지를 입어야 했다. 그전에 입던 바지는 바짓단을 늘일 만큼 늘리고도 너무 짧았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부터 매일 그 옷만 입는 나는 여전한 '단벌신사'였다. 어느 날 집 앞으로 아주머니 몇이 지나가면서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 쟤 입은 거 저거 어른들 속바지 아니 감? 순덕이 엄마가 지난 장날 사온거랑 똑같은디~"
나는 너무나 민망하고 창피해서 집으로 들어가 울었다. 다시는 그 바지를 입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그깟 말 좀 들었다고 우느냐고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지만 바지를 다시 사 주지는 않았다. 그 뒤로 나는 그 바지를 입을 때마다 부끄럽고 주변 사람들이 신경 쓰였었다.
이제 바지정도는 내 맘에 드는 걸로 사 입을 수 있는 지금이 나는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