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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

존재의 고유성과 구조의 폭력에 관하여

by Edit Sage

학은 다리가 길다.

그것은 자연의 문장이다.

의도도, 전략도 없이

그저 그러하기에 그러한 것.



그러나 인간은 말한다.

“너무 길다.”

“보기 싫다.”

“다 똑같아야 조화롭다.”



그래서 자른다.

틀림을 다름이라 부르지 못하는 세계는

늘 가장 먼저 ‘기이함’을 처단한다.

너무 긴 생각,

너무 느린 말투,

너무 깊은 감정,

너무 다른 리듬.



학의 다리를 자른 자는

조화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렇게 해야 예쁘지 않냐고.”

“너도 좀 자연스러워져 봐.”

“그건 네가 이상한 거야.”



그 말들은

고정된 기준이라는 거대한 프레임이

개별의 존재를 휘감아 으깨는 소리다.

이상함을 이상하다고 부르지 못하게 하고,

길다는 이유로

다리를 접게 만든다.



그러나 묻는다.

학의 다리가 정말로 길었던 것이 문제였나,

아니면

그 길이를 불편해한 시선이 문제였던가?



진짜 문제는

길이의 사실이 아니라,

정상의 정의를 독점한 자의 태도다.



학의 다리를 자르는 건,

단지 다리를 자르는 일이 아니다.

그 존재가 ‘자기답게’ 서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자르는 일이다.



그러니

너의 감정이 길다면

자르지 마라.

너의 말이 느리다면

서두르지 마라.

너의 길이,

너의 높이,

너의 중심을

너 아닌 자의 눈으로 재단하지 마라.



학은 ‘날기 위해’ 다리가 긴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걷는 방식’만을 기준 삼고

모두를 똑같이 만들려 할 뿐.



그러니,

네 다리가 길다면

접지 말고,

펼쳐라.

그건 네가

‘날 수 있다’는 증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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