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인 워딩”은 은폐된 진실을 반영한다
“도둑질하면 죽인다.”
“사람 죽이면 죽인다.”
“남의 부인 범하면 죽인다.”
너무도 직설적이다.
너무도 노골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그 사회의 진짜 두려움이 무엇이었는지가
언어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고조선의 8조법 중 실전된 5개 조항,
그 사라진 법률들보다
남아 있는 세 조항이 더 큰 울림을 준다.
•생존 기반에 대한 공포(도둑질)
•공동체 질서에 대한 공포(살인)
•혈통과 정조에 대한 공포(간음)
이 세 가지는
‘국가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 단위의 긴장감이었다.
국가란 불안한 것을 형벌로 억제하며 유지되는 시스템이었고,
그 불안의 중심엔 **‘행동’이 아닌 ‘질서의 붕괴’**가 있었다.
반면,
현대 사회의 법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공익에 반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법익 침해가 있을 경우 형사처벌을 부과할 수 있다.”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행위는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길고, 어렵고, 모호하다.
이건 단지 언어가 복잡해진 것이 아니라,
‘책임의 중심’을 흐리는 방어적 언어 설계다.
이제는 누가 잘못했는가보다,
“누가 더 잘 해석했는가”가 권력의 열쇠가 된다.
노골적 워딩은 진실에 가깝다.
정제된 워딩은 권력에 가깝다.
부여의 4대금법 또한
살인, 간음, 절도, 질서파괴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네 개의 조항이 사회적 존속을 위한 생존 본능의 문장화였다면,
현대 사회는
법률조항 그 자체보다,
그 조항을 해석하는 자의 ‘위치’가 더 중요해진 시대다.
법이 도구라면,
이제는 그 도구를 다루는 “문장력”이 권력의 실체가 되었다.
말이 길어질수록,
진실은 사라진다.
그래서 고조선의 법은 짧았고,
그 짧음이 곧 공포의 농도였다.
부여의 법은 단순했고,
그 단순함이 곧 공동체의 숨결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정교한 법률과 윤리의 언어 안에서
점점 더
진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복잡성은 가림이다.
노골성은 자각이다.
이제 되묻자.
우리는 무엇을 감추기 위해,
이토록 정교한 문장을 생산하고 있는가?
그리고—
진실은 정말, 말 속에 있는가?
아니면 말 이전에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