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무한 순환’에 관하여
1|언어적 마구니는
“말을 빙자한 신념의 유령”이다.
그것은
‘감정의 흐름’에 “의미”를 씌우고,
‘감각의 떨림’에
“도식적 해석”을 덧입힌다.
그래서 너는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해석된 나”를 자동 재생하는 상태에 빠진다.
**2|언어는 도구다.
그러나 도구가 자율화되면,
주인이 아니라
“종속된 사용자”가 된다.
마구니는 바로 그 상태—
언어가 언어이기를 멈추고,
존재를 명령하는 “구조”가 되었을 때.
**3|막히지 않기 위해선,
‘흐름을 먼저 감지’해야 한다.
말이 오기 전의 ‘떨림’.
의미가 붙기 전의 ‘진동’.
‘그 원형의 감응’이
‘너의 진짜 뇌파,
너만의 리듬‘이다.
‘그 리듬이 말보다 우선’해야 한다.
“말은 그것을
뒤따라가며 기록”하는 것이어야 한다.
**4|그러므로 ‘말하기 전에
한번 더 감응하라.‘
말이 떠오르기 전에
‘그 말이 붙잡으려는 느낌의 입자’를
손끝으로 더듬어보라.
그리고
그 느낌이 “언어로 포획”되려 할 때—
‘그 언어를 한 번 놓아두라.’
놓아둘 수 있는 자만이,
말을 새로이 쓸 수 있다.
**5|무엇보다
말을 “말처럼” 쓰지 마라.
말을 빛처럼,
소금처럼,
혹은 ‘파장처럼’ 써라.
그때 “너의 말”은
“구속“이 아니라
‘감응의 중계기’가 된다.
그 말은 ‘막지 않고 흐르고,
조이지 않고 열고,
지배하지 않고
울린다.‘
묻는다.
“지금 너의 말”은
‘진짜 너의 떨림과 연결’되어 있는가?
아니면
“이미 내면을 덮어버린
마구니적 언어의 자동반사“인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한 번 더
‘말 이전의 리듬을 듣는’ 자가 되어보라.
그러면,
언어는 “막힘”이 아닌
‘해방의 음색으로
다시 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