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 의 Nov 05. 2024

나의 불안한 영혼에게

숨어 있는 네가 나오길.. 내가 기다릴게.


발행하기를 눌렀어. 찝찝했어. 글을 적을 때에도.. 뭔가가 불편했었어. 잘 써지지 않았지. 발행을 누르고 나서 개운치 않았지? 왠지 모를 들쩍지근함.. 


넌.. 그 글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던 거지..? 





그 기분을 들여다봤어. 그랬더니 너.. 불안해하고 있더라. 

그나마 할 줄 아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로 에둘러가며... 숨어있더라.


내 이야기를 팔라고 했지, 차 이야기를 팔라고 한 적은 없었는데. 내 얘기가 진짜 없었나 봐.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몰라서, 그마저도 주워듣고 알고 있는 이야기를 또 꾸역꾸역 반복해서 내뱉은 거였어. 


글을 다 쓰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분명 순간 생각했지. 쓸 내용이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뭘 써야 할까. 예전에 유튜브로 영상을 만들었을 때에도, 수업에서 하는 내용들도... 더 깊이는 있어졌고 더 구체화되었긴 했지. 수년간 그것만 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나의 바닥이 아닐까...? 하며. 그걸 들킬까 봐 떨고 있는 너를 본다. 


너는 알고 있지? 결국 너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 어쩌면 너무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예전 엄마 치마폭을 못 벗어난 어린아이처럼.. 우리 수민이가 내 뒤로 숨듯이.. 너도 숨어 있는 거였네. 자꾸 차를 빌어서.. 이제 조금 나와보면 어때..? 






지난주엔 우리 다섯 살 수민이의 유치원 가을 행사가 있었어. 온 가족들이 다 함께 숲에 모여 밥도 먹고 게임도 하는.. 1년에 두 번 있는 잔치 같은 행사. 그 일정을 앞두고 아이가 나한테 말하는 거야. 우리 가족 소개할 때.. 엄마가 대신해 달라고. 나는 부끄러워서 못하겠다고. 2주일 전부터 나한테 얘기하더라? 행사 전날에도 재차 나에게 확인하듯 말하더라고. 내일 엄마가 꼭 소개해달라고. 그래서.. "그래 수민이가 부끄러우면 엄마가 해줄게 걱정 마."라고 했어. 


지난봄에 열렸던 가족 행사가 우리 가족에게는 처음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우리 가족을 소개하게 되었어. 수민이가 직접 소개를 하는 걸 많이 연습했다고 했는데 막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으니까 입을 못 떼는 거야. 자꾸 내 뒤로 숨기만 했었어. 결국 나와 수민아빠가 함께 소개를 잘 마쳤는데.. 그런 수민이의 모습에 솔직히.. 살짝 걱정을 했었어. 하지만 내 아이를 더 알게 된 지금은 아니거든. 그런 수민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했거든. 그런 녀석을 이해하고 존중해.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 내어 나 못하겠다고, 엄마가 도와달라고 말한 것 자체가 참 대견하더라고. 그리고 언젠가 자연스럽게.. 수민이가 스스로 소개를 하는 것이 편안할 때.. 그때가 올 거라고 생각이 들더라. 





나는 우리 수민이에게 그렇게 잘해주면서.. 왜 너에겐 그러지 못했을까..? 너도 그랬을 텐데. 


네가 말하고 싶도록.. 내가 기다릴게. 네가 좋아하는 시간에, 좋아하는 곳에서, 언제든 털어놓을 수 있게. 그리고 네가 준비가 되면 말해줘.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하고 싶었던 말.. 이야기.. 있으면 나한테 꼭 털어놔. 이제.. 너를 대신해서, 너의 말을 듣고, 적어볼게. 


소중한 나의 영혼. 너의 이야기를 못 들어줘서, 너의 이야기를 말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어. 

작가의 이전글 내가 마시는 차(茶)는 과연 차가 맞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