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01.
수업에서 만난 분들과 처음으로 따로 밖에서 어울리는 자리였어. 좋으면서도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갔지. 한창 맥주 마시면서 수다 떨고 있다가, 아이들이 걱정되니까 뭐하고 있나 싶어서 남편과 통화를 잠시 했었는데, 남편이 그러는거야. "시원하게 한 턱 쏘고 와~!"라고.
또 며칠 전엔 수민이 유치원 엄마들이랑 밤에 한 잔 하려고 모였었어. 그 엄마들과의 술자리는 처음이라 너무 좋았었지. 그때도 우리 남편은 그러더라. "자기가 멋지게 계산해~"
내가 계산을 했을까..? 못했어. 시도는 했는데 실패했지. 카드를 내민 내 손이 무안하게 저지 당했어. "아유, 됐어요~ 그렇게 계산하면 부담 되서 못 만나요~"라며.. 내 스킬이 부족했나..? 그렇게 헤어지고 나니.. 나 너무 창피한거야. 계산도 못하고, 또 괜히 나선 것 같고.. 계산 못했다는 내 말에, 우리 남편 얼굴에 비친 아쉬움 때문에.. 분명 기분 좋고 즐거운 시간 보냈는데 그 끝에.. 내 마음엔 불편함이 덕지덕지 붙어버렸어.
02.
며칠 전에는 스승님이 강의하는 자리가 있었어. 그날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우리가 생각하는 겉모습이라든가 드러나는 어떤 특징이 개성이 아니에요. 개성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배려하는 방식의 독특함이에요.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배려해요. 누군가를 배려하는데 배려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 거예요. 배려하는 내용도 다른 거예요. 배려하는 시기도 다를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a의 시기에 b의 방식으로 c라는 어떤 배려를 해요. 그게 그 사람의 개성이에요. ... 개성과 특징은 다른 거예요. 언어 개념 자체가 달라요. 그래서 남을 위해서 배려를 이렇게 할 때 정말 자기만의 모습으로 자기만 알죠."
누군가를 배려하는 방식의 독특함... 개성.
그때 순간 탁 떠오르더라. 내가 계산을 하지 못한 밤.. 찝찝함이 가득했던 건... 누군가를 배려하는 남편의 방식과 나의 방식이 달라서였단 걸.
나는 그 자리는 쏠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었거든. 다 처음 그렇게 만나는 자리였고.. 아주 친한 사이도 아닌데 내가 말도 없이 섣불리 계산을 먼저 해버리는게 오히려 그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남편의 말을 듣고 난.. 세상 쿨한 남편처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거야. 줏대 없이...
개성(個性). 성품 성(性) 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마음이 자라나는 모양새더라. 다른 사람을 향해 자라나는 마음. 그 배려의 각기 다른 모양새가 개성이었어. 사람을 배려하는 나만의 방식...
03.
최근 반성했어. 사람들과 만나 표현하는 것이 수줍은 다섯 살 수민이한테 내가 자꾸 말하고 있더라. "고맙다고 해야지" "안녕하세요~ 인사해야지".. 그런데 그런 수민이.. 어린 나 같았어. 그리고 나는 우리 엄마 같고..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어. 우리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그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수민이는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아이니까.. 수민이가 아직 표현을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그런 수민이를 존중하고 옆에서 그 마음이 안전할 수 있도록.. 딱 지켜주는 것이 내 역할이겠다는 거였어.
나도 사실.. 내 방식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 내 남편의 생각이 어떻든.. 우리 엄마 생각은 어떻든.. 내 친구들이 보기에 어떨지 몰라도. 나만이 가진 배려가 있다고.. 그게 수민이 나한테 하고싶은 말 아니었을까..?
04.
개성이 내 마음이 피어나는 모습이라면.. 그건 어떻게 자라날까?
이렇게 자라라, 저렇게 자라라.. 자꾸 옆에서 시키면 그 피어나는 모습을 온전히 볼 수가 없잖아. 그저.. 보고 배우는 것이 다이지 않을까.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선생님이, 친구가.. 하는 배려를 잘 보고 있다가 충분히 쌓이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 이지 않을까. 그래서 환경이 중요한 것이고..
'내 방식이 후지면 어떡하지? 내 방식이 너무 소극적인 거면 어쩌지? 조금 더 표현했어야 하나?'
'너무 과하고 싶지 않은 건데.. 그게 저 사람한테 부족하면 어떡하지? 내 마음이 너무 작게 보이면 어떡하지?'
나는 아직 내 개성을 제대로 발견해준 적이 없었어. 내 마음이 피어나는 방향과 모양, 그리고 속도를.. 몰랐어. 그걸 몰라서 자꾸 다른 사람들의 방식을 보면서 비교하고,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해 봐... 주변의 말에 너무 신경을 썼던 거야. 그렇다고 내가 표현 안 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저 방식이 다를 뿐인데.
그걸 알았다면, 우리 남편에게 자신있게 말했을 텐데...! 오늘은 쏘는 날이 아니라고.
05.
난 참 개성 없는 아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맞았네. 이 나이 먹도록 내 개성을 나조차도 몰라줬던 거야...
오늘은 말수가 적은 너. 살짝은 새침한 너.. 속상했던 거지...?
내가 기다릴게. 그리고 매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게. 매일 물 주고 햇볕도 쬐여 주고.. 내 안에 있는 지의의 말에 귀 기울일게. 언젠가.. 때가 되면 나의 개성도 꽃을 피울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