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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조 Mar 06. 2022

운명을 무속인에 위임하고픈 충동

타로, 별자리, 띠 운세를 전전하다가

타로, 별자리, 띠 운세를 전전하다가

"2022 임인년 닭띠분들 돈벼락 맞을 준비 하세요!" "[타로카드] 3월에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요?" "[타로] 이번 봄 나에게 다가올 운명적인 사건" "잘 맞는다고 소문난 마리끌레르 별자리, 2022년 3월 별자리 운세가 궁금하다면?" 새 학기의 달인 3월이 시작했다. 나는 타로카드부터 수잔 밀러의 별자리, 무속인이 봐주는 띠별 운세, 사주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운세를 폭식했다. 언젠가부터 달이 바뀌는 월말에는 습관적으로 유튜브와 여러 잡지에 업데이트되는 운세를 찾아보게 됐다.

2월에서 3월으로 넘어가는 새벽, 3월 운세를 폭식했다

맞다, 점치는 행위는 비과학적이다. 연초부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그의 아내 김건희 씨가 무속인을 의존하고 있다는 의혹을 보며, 샤머니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등이 울리기도 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뻔한 말로 복채를 털어간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내 미래에 대해 누구라도 말해줬으면 하는 버거운 결정의 순간 앞에서는 불안이 이성을 압도한다. '신점이나 보러 갈까?' 하며, 언젠가 용한 점쟁이를 알아냈다는 직장 동료에게 받아놓은 전화번호를 들여다본다.

가끔 샤머니즘의 유혹에 넘어가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성의 끈을 붙잡고 공짜 운세를 보는 것에서 타협한다. "복채는 구독과 좋아요"라며 봐주는 유튜브 타로점은 운영자가 뽑은 카드 뭉치 다섯 개 중에서 끌리는 뭉치 하나를 선택하고 그 풀이를 듣는 이른바 '제너럴 리딩'이다. 타로 마스터를 마주하고 내 손으로 카드를 고르는 오프라인 타로점에 비해 못 미덥다 싶다가도, 뻔한 이야기만 듣고 지불한 복채 3~5만 원에 입맛이 썼던 경험을 떠올린다. 6인치 화면 너머로 셔플 하는 카드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뭉치를 신중히 고르고, 내가 원하는 해설이 나올 때까지 여러 채널을 전전한다.

안다, 내 미래에 대한 결정을 눈 딱 감고 타인에게 떠넘기는 행위는 나 자신에 대한 무책임이다. 그 '타인'이 하나님이나 부처님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절대자도 아닌 얼굴도 모르는 타로 마스터라면, 나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이해하고 있는 가족과 친구도 아닌 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과 생년월일시뿐인 무속인이라면 더 문제다.

수십 개의 질문으로 정체성을 정의하고 내 행동 패턴까지 분석하는 MBTI 또한 사주와 결이 같다. "난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 ESTP형이야."라며 MBTI 결과지에 나온 문장들에 내 자기소개를 떠넘긴다. 자아탐색과 정체성 확립은 너무 어렵다. 어디서부터 무슨 고민을 시작해야 할지도 아득하기만 한데, MBTI와 사주는 너무 간편하고 명료하게 나를 정의한다.


송은 문화재단 신사옥 개관전에서

지난 1월 송은 문화재단 신사옥 개관전으로 하는 ‘제21회 송은 미술대상전'을 보러 갔다. 1시간 가까이 도슨트와 함께 전시를 봤는데, 해설을 듣고 나서야 전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물체와 붓선의 나열에 작가의 창작 의도가 더해졌을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됐다.

창작 의도가 중요하기는 작품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요즘 자주 들리는 '퍼스널 브랜딩'과 과거 자주 들렸던 '스토리텔링'은 결국 내가 보고 겪은 구슬을 그럴듯하게 꿰는 것이다. 남들이 혹하는 이야기 한 편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인데, 괴롭겠지만 내 삶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제일 그럴듯한 줄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래를 점쟁이의 추측과 간략한 MBTI 질문지에 위임해선 안 된다. 같은 사주팔자를 가진 사람들도 다른 삶을 산다. 삶을 실시간으로 통과하고 있는 나 자신이야말로 내 삶을 해석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그 이야기와 전망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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