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10 아픈 환자 마음의 눈물 닦아주기

by 한우물

50대 중반의 여자 환자.

배가 아파서 왔단다.

초음파검사 상 정상이다.


검사를 마친 후 잠시 상담을 해주기 위해 침대 위에 앉게 하고 환자와 마주했다.

모두 정상이라고 말했더니 “그런데 왜 이렇게 아랫배가 아픕니까?” 하면서 손가락으로 좌측 하복부를 가리킨다.


임상에서 기록한 검사의뢰서에 적힌 간단한 설명에는'상세불명의 복통'으로 되어있고 검사 부위도 '상복부 초음파'로 되어있다.

상복부 초음파는 말 그대로 배꼽 위로만 보는 검사고 아랫배를 보려면 '하복부 초음파'를 다시 내야 하는데, 하지만 어쩌겠나 거기가 아프다는데.


환자를 다시 눞게 하고, 벗은 글로브 다시 끼고, 아프다는 부위와 그 주변으로 탐촉자를 갖다 댔지만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아 이번에는 손으로 직접 촉진을 해보기로 했다.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배를 두루 눌러보았을 때 장은 소프트하고, 특별히 뭉친데도 없고, 평소에 통증을 호소하는 부위를 눌러도 아픈 표정이 아니다.


“이래도 안 아파요? 보통은 아프다는 부위를 누르면 더 아픈 법인데?”

“가만있으면 되게 아픈데, 선생님이 누르니 안 아프네요.”


이제 뭔가 감이 온다.

마음의 병이 신체증상으로 나타나는 Psychosomatic disorde(정신신체이상).


“나중에 내시경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환자분이 느끼는 증세는 기질적 이상이 아니라 기능적 이상에서 기인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증세는 기분이나 마음 상태에 따라 많이 좌우되지요.”


관상을 보아하니 눈썹이 가지런하니 그린 듯 잘 생겼는데 숱이 짙고, 미간이 좁고, 콧잔등이 가파르다.


"신경이 좀 예민한 편이지요?"

"아닌데요. ."


"완벽주의는 아니고?"

"아닌데요. 그냥 대충 살려합니다."


"살려하는 것 하고 사는 것 하고는 다르지."


도사 행세 한번 해보려 했더니 통 말발이 안 먹힌다.

내 능력을 탓해야 할지 환자의 눈치를 탓해야 할지?


이제 마지막 남은 한칼.


"걱정이 많은 편이지요?"

"예."


"얼굴은 웃는데 눈 주변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얼굴에 기쁨이 없어. 무슨 고민이 그래 많노?"

"그러기 말입니다. 평소에 제가 걱정이 많아요. 별 일도 없는데 자꾸만 걱정이 됩니다."


"아이고, 지금 이 나이에 무얼 그리 붙들고 못 놓을 게 있노? 다 내려놔라."

"그게 안 돼요."


"그럼 명상을 좀 해보시지 그래."

"하고 있어요."


"얼마나?"
"7년째 국선도 하고 있어요."


"그 정도 명상을 했다는 사람이 그래 못 내려놓나?"

"....."


여전히 얼굴이 밝지를 못하다.


"과거에 아픔이 많았구나."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이제 답 왔네. 남한테 말 못 할 고민 혼자 부둥켜안고 살아온다고 얼마나 힘들었겠노? 그러니 어째 병이 안 생기겠노? 이제 마~ 다 내려놔라. 아무리 가슴 아픈 일도 긴 세월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니라. 이제 이 나이에, 과거의 상처 붙들고 그래 인상 쓰고 살면 뭐 하겠노? 하루하루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지."

"....."


"혼자 삭이려면 너무 힘들 테니 하나님 앞에 나아와 다 내려놓고 기도해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살면 그게 바로 지상의 낙원을 누리는 것 아니겠소?"

아침에 묵상하며 되뇌었던 성경 말씀이 절로 나왔다.


그러자,

환자는 내가 한마디 할 때마다 손을 합장하고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절절한 눈빛과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환자로부터 점점 밝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앉은 폼을 보니 허리가 구부정하고 어깨가 앞으로 쏠린다.

"근력 운동은 안 하세요?"

"따로 하진 않습니다."

"어깨와 목, 안 당겨요?"

"당겨요."

"허리는 안 아파요?"
"많이 아파요."


"그럼 이제부터 필라테스를 다니세요. 그리고 본인이 즐기면서 빠져들 수 있는 취미를 찾으세요."


그러면서 내가 6년째 다니고 있는 필라테스 이야기, 내 책 내용 이야기. 브런치에 올리는 내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환자는 눈을 반짝이며 빨려 들어온다.


어이쿠, 시간이 너무 갔네.

내가 병원에서 환자와 대화를 나눈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상담을 마치고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며 돌아서는 환자를 보고 있으니 내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참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어쩌면 그 환자분이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몸과 마음을 강건히 해서 건강하고 즐겁고 복된 인생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시길......



Photo by SS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