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우물 Feb 23. 2024

인생에 꼭 필요한 세 가지 복과 그 의미


받는 복 


사람은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고 태어난다.

결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복. 그러면서 공평하게 주어지는 복. 그것은 바로 생명이다.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100억 대 1의 경쟁* 속에 나 하나가 선택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인간이란 생명체로서 동일한 존엄성을 지니고 동등한 대우를 받을 자격을 가진다.    


생명 다음으로 주어지는 것은 그 생명 속에 들어있는 DNA다.

이 속에는 외모, 체형, 키, 건강, 지능, 재능, 기질(성격), 감성, 의지 등 나의 온갖 형질을 결정하는 비밀 코드(code)가 들어있어 80억이 넘는 인구 중 단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를 특정 지우고 다른 사람과 구분한다.


이런 DNA를 지닌 내가 세상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맞닥뜨리는 복은 부모복이다.

DNA를 물려준 것도 모자라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나를 키워주고 보살펴주고 가르치며 뒤를 밀어주는 부모. 그런 부모의 은혜는 나에게 생명을 준 하늘 다음으로 크고 지대하다.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복은 타인과 접촉하게 되면서 만나는 인복(人福)이다.

내가 의도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음에도, 내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얽히게 되는 관계.

     

이 모든 것은 내 선택의 여지없이 나에게 부여되는 운명 같은 것이고 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복은 사람마다 차등을 두어 부여된다.     


누리는 복


내가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받은 복은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내가 개입할 부분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것을 얼마나 누리며 살 것인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라, 여기에 기막힌 인생의 묘미가 있다. 


짓는 복


받는 복이 있으면 짓는 복도 있다. 이 또한 온전히 나의 몫이고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가 보석처럼 빛나게 되는 성스러운 영역이다. 

받는 복은 그저 받은 것이라 자랑거리가 못되지만 내가 지어가는 복 속에는 나의 선한 마음과 정성과 수고와 땀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간 귀하고도 귀한 것이라 내가 자랑하지 않아도 남들이 칭송해 준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참 불공평하게 보인다.

사람마다 주어진 복의 분량이 다르다 보니 이건 마치 인생이란 마라톤 대회에서 선수들의 출발점을 달리해서 뛰라고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래서 그럴까? 세상에는 내가 받은 복에 감사하는 사람보다 원망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원망하는 마음의 가장 큰 원인은 자기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것과 비교하는 데 있다. 

나보다 적게 받은 더 많은 사람은 보지 않고, 나보다 많이 받은 소수의 사람들만 올려다보면서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원망하고 자기비하감에 빠져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받은 복 중에 내 힘으로 이룬 게 하나라도 있나? 

아무것도 없다. 그 모두가 그저 받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주관자의 처사에 이러쿵저러쿵 불평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받은 복이 아무리 많아도 감사하게 생각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복이라 할 수 없고 받은 복이 아무리 많아도 제대로 누릴 줄 모른다면 그 복이 다 무슨 소용 있으리요?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오로지 그것을 지키고 불리기에 급급하여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한없이 인색하게 구는 사람. 그래서 친구에게조차 밥 한 끼 제대로 살 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은 결코 부자가 아니요 한낱 어리석고 불쌍한 가난뱅이일 뿐이다.     

 

하지만 받은 복이 아무리 적다 해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마음껏 누리고 산다면 그야말로 진정 부요한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이다.    

      

복은 복답게 쓸 때 복이 된다.

자신이 부여받은 부와 재능을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쓰면서 교만한 마음으로 남 위에 군림하려 든다면 그 복은 복이 아니라 그 분량만큼 재앙으로 돌아온다.     


내 받은 복이 적다면 복을 지으며 살면 된다. 

그래서 부족한 분량 채워 넣으면 된다. 받은 복은 나날이 소멸해 가지만 짓는 복은 나날이 불어난다. 내가 심은 작은 씨앗 하나가 나중에 엄청난 크기의 열매로 자라나듯 내가 짓는 복은 몇 배, 몇십 배로 불어난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복을 짓는 것일까?

간단하다. 내 가진 것을 나만의 것으로 생각지 않고 타인과 함께 나누면 된다.     


내 손에 쥔 것, 필요로 하는 이웃과 함께 나누고

내 마음에 있는 정, 서로 주고받으며

내 속에 품은 사랑, 아낌없이 베풀고

내 이웃의 아픔과 슬픔, 내 가슴에 품어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 손 내밀어 밥 한 끼 대접하는 것.

그래서 세상을 보다 윤택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데 힘을 보태는 것. 

이럴 때야말로 우리 스스로 복을 지어갈 뿐 아니라 누리는 복 또한 배가(倍加)된다.          


생명이 다하는 순간,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뉠 것이다. 

받은 복 다 탕진하고 빈 손 들고 허망한 얼굴로 선 사람과 두 손 가득 지은 복 들고 빛나는 얼굴로 선 사람. 

그들이 하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들에게 생명을 준 이가 물으며 셈하려 들 것이다.          


"내가 너를 보낼 때 세상을 이롭게 하라고 들려준 100냥 어치의 복. 그것으로 너는 얼마나 심고 얼마나 거두어 왔느냐? 어디 한번 보여주려무나."      


그러면서 그는 많이 준 사람일수록 더 많은 걸 요구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참으로 공평한 것이다.     



# 100억 대 1의 경쟁*이라는 근거

남녀가 결혼 후 일주일에 두 번 관계하여 1년 만에 아기를 가졌다고 가정했을 때

* 1년은 52주. 52 주 x 2 = 최소 100

∴ 1년 사정 회수 = 100   

  

* 한 번 사정 시 나오는 평균 정자 수는 1ml 당 약 6,000만 마리. 1회 사정 시 정액량은 3-6 ml.

∴1 회 사정 시 나오는 정자 수는 최소한 1억 마리     


* 1년에 질 속에 배출하는 정자 수는 1억 x 100 = 100억 마리

* 이 중 수태되는 정자는 단 한 마리.

∴ 1년 만에 아기가 태어나면 그는 최소한 100억 대 1의 경쟁을 뚫고 나온 위대한 존재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