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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버드 Jul 10. 2022

내가 죽으면 너도 죽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심리 이야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스포일러 있음)


돌보지 않은 감정은 쓰레기 같아서 마음 깊숙한 곳, 무의식이라는 쓰레기통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것을 모르고 살다가 특정한 순간에 악취를 느낄 때가 있다. 이것을 자각하면 순간 자신이 혐오스럽다. 한쪽 구석에 치워둔 불편한 감정이 차고 넘치면 그제야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그때 찾은 방법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어떤 이는 누가 볼까 수치스러워하며 원래 있던 곳에 꾹꾹 눌러 담거나  어떤 이는 자기 쓰레기를 를 대신 받아줄 ‘누군가’를 찾는다. 쓰레기가 나올 때마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상담은 화를 ‘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선생님은 욕도 하고 소리도 지르면서 거칠게 화를 내는 것이 상담의 시작이라고 했다. 상담을   조차도 나는 화를 내는 것이 어렵다. 분노를 표현하면 정말 자유로워질  있을까?  돌볼  없었던 감정들이 도처에 널려있고 그것들을 활활 불태워 없애버리고 싶다. 가끔 불같이 화내는 상상을 하곤 하지만  불덩이가 나까지 집어삼킬까 무서워 서둘러  마음을 덮어버린다.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하울의 움직이는  ‘불의 악마캘시퍼에 대해 말해주었다. 캘시퍼는 삶을 살게 하는 에너지, ‘생명력이라고 하면서 두려워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힘을 다루려면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꺼져가는 불씨를  겨우겨우 붙잡고 살고 있다가 ‘하울의 움직이는  다시 보고 내 캘시퍼를 알고 싶어졌다.


하울과 캘시퍼는 서로가 서로에게 갇히는 저주에 걸렸고 풀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억지로 하울의 성을 움직여야 하는 캘시퍼는 화가 나있다. 심장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하울은 공허하다.  캘시퍼가 죽으면 하울도 죽는다. 마음을 외면하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하울의 성이 보여준다. 덜컹거리고 부서질 것 같은 거대한 성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작은 문, 복잡하고 지저분한 성 안, 길고 긴 동굴을 지나가야 나오는 하울의 은신처. 영화에서는 그 작은 문으로 누군가 들어가 저주를 풀어주지만 내 저주는 누가 풀 수 있을까?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 있을까? 상처받을 때마다 은신처에 숨어서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감정을 억누르면 비극이 생긴다는 것을 나는 몸소 경험했다.


분노는 나쁜 감정이라 생각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면 내가 원했던 것, 내게 중요한 것도 함께 버려진다. 하울처럼 상처 입고 피 흘리며 살게 된다. 좌절된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하울이 살고 있는 괴상한 성 같은 삶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그때를 지나치치 않고 자기 마음을 따라가는 것은 감정의 쓰레기가 쌓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중요한지 집중해서 생각하다 보면 분노 이면에 숨어있는 슬픔을 마주할 수 있다. 그 슬픔 안에 한참을 머무르는 것이 자기를 치유하는 일이다. 요즘엔 오래 묵혀있던 화를 꺼내고 있다. 내 안의 분노가 무섭지 않다.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면 분노는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 남에게 떠넘길 때는 쓰레기가 되지만 내 것임을 알고 이해하면 감정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다. 캘시퍼도 악마가 아니다.


”나 꺼지려고 해! 내가 꺼지면 하울도 죽어!”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useop22/222692903238










































우리의 마음 안에도 캘시퍼가 있다. 캘시퍼는 마음의 힘이다. 잘 다루면 제 기능을 하지만 돌보지 결국 자기 자신의 성이 멈추거나 무너지고 만다. 써야 할지 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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