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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버드 Jul 12. 2022

최고의 유산

우울증 엄마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유일한 재산

아이와 함께 상담을 시작할 때  아이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갑자기 불안해진 나는 아이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하고 지적하면서 몹쓸 말들을 쏟아냈다. “중학교 1학년 정도 됐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사회 나가면 지금보다 훨씬 힘들어.” “도대체 너는 왜 엄마 말을 안 듣니?” “이게 나 좋으라고 하는 말이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대부분 가스라이팅이었다.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자신이 마음에 안 들고 싫었을 것 같다. 달라지는 방법을 몰라 막막했을 것 같다. 도움을 주지 않는 엄마에게 화가 났을 것 같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고 자신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을 것 같다. 표정이 점점 사라지는 아이를 보며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이가 자아를 찾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정작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면서 아이를 몰아붙였다. 아이는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인생이 괴롭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엄마가 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갈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 많이 싸웠다. 삶과 언어가 통합되지 않은 채 아이를 훈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침대 속에 납덩이처럼 파묻힌 엄마가 자기에겐 공부하라고 해대니 그 말이 듣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 상담 선생님은 아이에게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엄마가 자기 삶을 찾는 것을 보여줄 때라고 했다. 추락하고 있는데 어떻게 삶을 찾으라는 것인지 나  역시 막막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노력했어.” “힘들었지? 이제 쉬어도 돼.” “지금 못 해도 괜찮아. 하다 보면 잘 될 거야.” 어린 시절,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다. 나는 내가 불편하고 못마땅하다. 스스로를 충분하다 느낀 적이 없다. 충분하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모른다. 부모가 되어서는 나를 보듯 아이를 바라보았고 나를 다그치듯 아이를 다그쳤다. 나쁜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아이는 잘 키웠다고 인정받길 바랬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을까?


일주일에 한 번, 왕복 두 시간,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상담을 시작했던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리는 성장했다. 걱정과 불안의 근원을 찾아 나를 달래는 것이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내가 나를 바라보듯 아이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차를 타고 오가는 길에 아이가 하는 말을 주워 담으며 그 말 뒤에 숨은 마음을 본다. 어떤 말을 해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다행히 아이는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보여준다. 아이가 통찰력 있는 문장을 쏟아낼 때 그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데 잘 다듬어서 책으로 엮어주는 것이 내 꿈이다. 내가 줄 수 있는 유산은 이것뿐이다. 이 마음으로 아이와 깊이 마음을 나누려 한다.


"네가 너의 아픈 마음을 어떻게 돌봐줬는지, 네 마음에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어. 함께 이야기하며 너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 정말 고맙다."


표지, 본문 이미지 출처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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