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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버드 Jan 28. 2022

가라앉는 건물

건물을 짓지 못한 당신을 향한 위로


[인사이드 아웃]은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열두 살 ‘라일리’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인간의 감정, 생각, 기억, 무의식, 성격, 가치관의 변화를 함께 따라간다. 나는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라일리에겐 다섯 개의 성격 섬(가족 섬, 정직 섬, 우정 섬, 엉뚱 섬, 하키 섬)이 있다. 섬 안에는 멋진 불빛, 멋진 장식, 멋진 건물로 가득 차 있다. 라일리는 안전함을 느끼며 자존감, 도덕성, 사회성을 키워가고 있다. ‘엉뚱 섬’은 아이의 해맑고 순수한 모습을 의미한다. 섬의 불이 꺼지지 않고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돌보는 것은 중요하다. 사춘기 시기에 혼자 어설프게 세운 건물이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잡게 해 줄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의식되지 않은 무의식은 곧 운명이 된다.

                                  카를 융



아직도 잊히지 않는 꿈이 있다. 해안 가까이 모래 위에 10 정도 되는 콘크리트 건물이 보인다. 남편은 밖에 있고 아이와 나를 찾고 있지만 그다지 다급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건물 안에 있다. 남편에게 우리가 있는 곳을 알려주기 위해 창문 앞에서 그를 보고 있다. 나도 그리 애타는 마음은 아니다. 나는 어두운 방에 아이를 들여보낸다. 문이 유난히 두껍고 무겁게 느껴진다. 거대한 바위가 먼바다에서 다가오는  보인다. 파도의 일렁임이 무섭다. 바위는 건물을 쓰러뜨리고 건물은 바다 밑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나는 창문을 통해 가까스로 빠져나와 수면 위에 둥둥 떠있다. 그때 아이가 방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가라앉는 건물을 향해 바다 밑으로 헤엄쳐 내려가 방문 앞에 도착한다. 문에 작은 구멍이  있어 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물끄러미 나를 본다. 나는 구멍에 손을 넣어 아이의 얼굴을 만지고 이름을 부르며 흐느껴 운다. 이상하게도 물속에서  쉬고 있는 느낌이 든다.


선생님은 콘크리트 건물이 나라고 했다. 창문의 크기를 물어서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하니 창은 외부와 나를 연결하는 통로인데 작은 창이라도 있다니 다행이라고 했다. 건물이 부서졌는지도 물어서 부서지지 않고 가라앉았다고 했는데 그것 역시 다행이라고 했다. 죽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단단한 콘크리트 벽으로 지금껏 자신을 지켜왔는데 만약 건물이 부서진다면 자신을 지키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부서지지 않고 가라앉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방에 갇힌 그 아이는 지금 함께 사는 아이가 아니라 ‘어린 나’라고 했다. 고통을 끌어안고 한참을 홀로 있어서 외로웠을 거라고 했다. 가라앉는 건물에 갇혀 자기를 구해주기만을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가엾고 애틋했다. 나에겐 라일리처럼 기둥을 깊게 박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없고 건물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 하나 겨우 세워놓고 곧 무너질 거라고 저주하며 살았다. 모래 위에 지었으니 쓰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린 나’는 늘 불안했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어떻게 절망에 도달하였는지 알면
그 절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발터 벤야민




수면 위에 가볍게 떠 있는 것을 거부하고 숨 쉴 수 없는 바닷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구하려고 한 것은 고통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두꺼운 콘크리트 문에 작은 구멍이 나있는 것은 아이를 그곳에서 꺼내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아닐까?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한참을 흐느껴 우는 것은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눈물과 함께 떠나보내려 하는 마음이 아닐까? 나는 ‘절망의 이유’를 찾으러 바다로 뛰어들었고 이유를 찾았기 때문에 애도할 수 있었다. 숨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아도 됐다. 꿈에서 그랬던 것처럼 ‘절망의 바다’ 속에서 숨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꿈은 말하고 있다. 충분히 애도하고 나면 건물의 설계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 상담의 과정은 괴롭고 힘들지만 그것을 잘 견뎌낸다면 건물을 지을 힘이 생길 거라는 말. 나에게는 그 과정이 내 건물의 착공식이다. 나는 건물을 지으려 한다. 누가 봐도 멋진 건물이 아니어도 된다. 스스로 지었다는 것이 멋진 것이다. 좋은 자재를 구하고 있다. 언제 완공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해 볼 생각이다. 힘이 생긴 것 같다.





표지 : <파도야 놀자> 이수지

삽입 이미지 :  <파도야 놀자>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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