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먹는 거 자는 거 이동하는 거 등 자유여행은 자신이 없어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선택했다. 그나마 일정이 좀 여유로운 상품을 골라서 가니 기대 이상 만족도가 높았다. 여행 일정을 같이하는 동행이 20여 명 정도였으니 나름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였고 연령대 등도 비슷하여 첫날의 어색함은 금방 사라지고 여행하는 동안 자연스레 친해지기까지 했다. 그 들 중 여행 후에까지 계속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었다.
은퇴 기념으로 여행을 같이 떠나왔다는 부부였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그 분야의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가 은퇴했다는 남편은 자신의 원래 꿈은 역사 교사였다고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유적지나 박물관 같은 곳에 가면 그의 흥미와 관심은 남달랐고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 가이드의 일반적인 설명과 달리 그의 이야기는 마치 몰랐던 야사를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며칠을 동행하며 연신 감탄하는 나에게 그의 아내는 익숙한 남편의 모습인 듯 한마디 했다.
“아유, 우리 집 며느리가 둘인데 명절날 며느리들이 시아버지랑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연휴 때는 며느리들이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는 통에 귀찮아 죽겠답니다.”
나무람을 가장한 행복한 자랑이었다.
며느리랑 시아버지가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나는 무슨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시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요즘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집안의 어른, 가장, 기본적으로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어렵다. 지키고 갖추어야 할 '예'가 많은 관계. 더구나 나의 시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게 된다?
경박하고 사람이 가벼워진다?
진중하고 차분해야 한다, 그런 의도이신가?
나중에는 시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이런 걸 물어봐도 될까, 안될까, 말씀이 없는데 나 혼자 이것저것 말 붙이는 것도 불편해하시겠지, 하며 여러 가지에 호기심이 많은 편인 나였지만 나도 점차 시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하게 되었고 의례적인 인사만 하는 관계가 유지되었다.
돌아가시고 나니 시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하며 사셨을까?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떨 때 화가 나셨을까? 시아버지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들이 문득 들기도 했었다.
말이 없으셨던 게 그분의 성격이고 그 말 없음 속에 말보다 더한 마음이 한가득 있고 정이 있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아버지란 이유로 며느리라는 이유로 그분과 나와의 사이에는 허들 아닌 허들이 있었던 셈이다. 돌아가시고 나니 좀 더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부모와 자식, 시부모, 장인, 장모, 시누, 동서, 친구, 직장 상사, 동료..
살아가면서 우리가 맺은 관계 속에서 붙여진 수많은 타이틀,
그 사회적인 모든 이름표와 무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
이름표와 상관없이 존경을 표하고 라이킷을 표현할 수 있는 관계.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런 바람이 SNS상의 익명의 친구를 만들고 그 친구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 그런 관계를 ‘우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정에는 위계가 없다. 높낮이가 없는 관계에서 싹튼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우정,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우정, 장모와 사위 사이의 우정, 시누와 올케 사이의 우정, 부모와 자식 사이의 우정 같은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내 친구 OO를 존경한다, 좋아한다’처럼
부모가 자식을, 시누가 올케를, 교사가 학생을, 형이 동생을, 삼촌이 조카를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를 소망해 본다.
역사 교사가 꿈이었던 그 아저씨는 로마투어를 하는 동안 그 해박한 지식과 말솜씨로 일행을 즐겁게 해 주었다. 로마 공화정의 인물들, 시저,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에 얽힌 숨겨진 야기들, 콜로세움에 얽힌 이야기, 바티칸 박물관의 벽화에 관한 그 엄청난 이야기들을 마치 역사 선생님처럼 풀어놓는데 우리는 모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가 놀라웠던 것은 그의 해박한 역사 지식이 아니라 며느리들과의 관계였다.
시아버지는 영어로 ‘father in law’, 며느리는 ‘daughter in law’이다.
아버지이고 딸인데 ‘법적인’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그 ‘법’이라는 말에는 강제성의 냄새가 강하다. 싫어도 애써서 지켜야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많은 관계다.
물론 관계 속의 기본적인 '예'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관계에서는 그런 강제성과 억지가 없어 보였다. 마주 앉은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는 그 어려운 구부관계가 아니다.
흥미로운 관심의 영역을 공유하는 보통의 친구관계 같았다.
그는 젊은 세대인 아들 며느리들과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닌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시부모 중에 한 분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남편의 어머니, 결혼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법적으로 맺어진 관계, 당연히 핏줄로 연결된 친정엄마에게 와 같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길 수가 없다. 해서 나는 시어머니를 한 여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기 시작하자 정말 많은 게 달라졌다.
아주 오래전 이 땅에 태어나 전쟁과 가난을 경험하고 가부장제 사회의 억눌림 속에서 순종을 미덕으로, 운명으로 알고 살아온 여자.
오랜 세월 종갓집 종부로 수많은 제사와 명절을 치르며 힘겹게 살아온 여자.
그런데 요즘 근처 복지관에 다니며 하모니카도 배우고 포켓볼도 배우는 씩씩하고 멋진 여자.
와우! 시어머니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힘들게 살아온 이 땅의 여자, 그러나 꿋꿋하게 살아가는 멋진 여자. 그녀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시어머니’라는 이름표에 따라다니는 부자연스러운 의무와 기대, 강요된 '예' 따위를 걷어차 버리자 한 인간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연민이 가능했으며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고 피천득 님이 자신의 딸을 떠올리며 한 말이 생각난다.
‘외동딸 서영이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며 내 딸이자 뜻이 맞는 친구’라고 했던.
존경하는 딸, 존경하는 아들, 존경하는 며느리, 존경하는 조카, 존경하는 부하 직원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싶다.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위계질서는 자주 본질과 핵심을 흐리게 한다.
나이에 의존하여 “감히.. 네가”라고 뇌까리는 꼰대는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나이가 아니라, 지위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그의 생각이, 그의 관심과 흥미가, 그의 지향이, 그의 꿈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누구와도 무해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그 누구든 각자의 이름표에 들러붙은 의미 없는 껍데기와 편견을 걷어내고 그냥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무엇보다 내가 먼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