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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늘 Feb 02. 2024

거절의 메시지

  집 인테리어를 계획하고 있다. 인테리어업체 이곳저곳 공사 관련 견적을 보며 비교하고 있는 중이다. 

10여 년 전 지금 집을 구입하며 기본적인 인테리어만 한 상태라 낡기도 했고 기분 전환도 할 겸 고민 끝에 시작한 일이다. 예전 인테리어를 한번 해 본 후 생겼던 여러 가지 불만족한 부분과 후회되었던 부분, 업체에 대한 불신감 같은 게 떠올라 이번에는 제대로 옥석을 가려 꼼꼼하게 해 보자는 생각으로 여러 곳에 견적을 의뢰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랑 상담을 진행할수록 나에게도 보는 눈, 비교하는 눈도 저절로 생기는 것은 의외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기존 낡은 상태의 구조물 철거에서부터 목공, 전기 배선공사, 도장, 도배, 가구 등 정말 분야별로 일이 많았다. 내부 공간 구조에 소소한 변화를 주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은 다양했으며 자재, 색상, 설비 등등 정말 상담을 진행할수록 내가 인테리어에 관하여 전문가가 된 것처럼 아는 게 많아졌다.  

    

오래된 구축 아파트인지라 기본적인 구조가 요즘 신축 아파트의 효율적인 공간 활용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실감하게 되었다. 예전 집들은 개인 공간인 방의 크기는 비교적 크지만 주부의 공간인 부엌에 대한 홀대, 가족의 공동 공간인 다이닝 공간에 대한 무시가 여지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주어진 기본 골조 안에서 그래도 나름 변화를 주고 싶었고 나의 그런 바람을 전달받은 업체 상담사들은 열심히 고민하고 실측을 하며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 과정에 동참하고 있는 나도 은근히 재미있었다. 일이 힘들어도 이렇게 공간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즐거움이 있어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러 사람과 상담을 진행하던 중 한 업체의 상담자가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신입 2년 차라고 소개한 그녀는 정말 대학을 갓 졸업한 듯한 어린 외모에 진지한 눈빛으로 집안을 꼼꼼히 살폈다. 일이 힘들어도 재미있다고 했다. 퇴사를 꿈꾼다는 젊은 세대가 주류라지만 그녀는 나름 자신의 일과 직업의 세계 속에서 행복해 보였다. 


요즘 유행하는 인테리어 트렌드를 소개하면서도 우리 집 컨디션에 어울리는 구조와 디자인, 색감을 추천했으며 자재별 특징과 가격 등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받은 아파트 설계도면을 공유하면서 설비 관련한 변경 및 안전 문제 등도 꼼꼼하게 짚어주었다. 오후 2시경에 집에 방문했는데 저녁 늦게까지 상담을 진행해 주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온 마음을 다하는 그녀의 정직한 젊음에 마음속으로 내내 감동받고 있었다. 우리 집 인테리어를 이 회사에 맡겨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결론만 얘기하면 그 신입 사원이 상담해 준 곳이 아닌 다른 업체와 계약을 했다. 그녀에 관한 나의 의견을 현실감 없는 감상으로 평가 절하하며 인테리어 계약 과정을 주도한 남편의 의지가 더 크게 작용했다. 

이후의 고민은 계약을 못 하게 된 여타의 업체들에게 거절의 답변을 보내야 하는 일이었다. 

거절하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어느 정도의 테크닉이 필요하고 결단력, 용기 같은 게 필요하다. 

나는 거절해야 하는 몇 군데 업체에 문자를 보냈다.

“우리 집 인테리어를 다른 업체와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친절하게 상담해 주시고 자세하게 견적도 내주셨는데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세 군데 업체에 거절 메시지를 보냈는데 한 곳에서는 답신이 없었고 두 군데서는 

‘알겠습니다.’라고 짧게 한 마디 답신이 왔다.      

그런데 그 인상적이었던 신입사원에게서 온 답신은  


“아닙니다, 고객님. 전달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쁜 인테리어 하세요.”였다. 


계약을 못 하게 된 업체에게는 따로 거절의 메시지를 굳이 보내지 않는 소비자들이 있었을 터이니 거절의 답신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쁜 인테리어를 하라고 기원을 해주다니...   

  

나는 그 메시지를 쓰고 있었을 그 신입 사원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애썼다.

온 힘 다해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썼는데 거절당했다. 허탈하고 기운 빠지겠지. 그리고 내가 야속하겠지.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더욱 힘들다고 느끼겠지.

솔직히 그 마음을 모른다. 다만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거절, 거부, 실연 같은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아델. 워낙 유명한 가수여서 그녀의 노래 ‘Rolling in the deep’, ‘Someone like you’ 같은 노래는 음악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익숙하다.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인 ‘Someone like you’는 아델 자신이 결혼 직전까지 갔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그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 정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심정을 담은 노래라고 한다. 


외롭고 힘들었던 청춘 시절 연인을 잃은 슬픔이 어떠했을까? 

오직 피아노와 아델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그 곡을 들은 첫 느낌은 ‘담담함’이었다. 

자포자기나 울분, 원망, 분노가 아닌 담담한 이해와 긍정, 그리고 정직한 소망을 이야기하듯 차분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가사가 생각난다.


I heard that you're settled down

당신이 정착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That you found a girl and you're married now

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했다는 얘기를  

   

I heard that your dreams came true

당신의 꿈이 이뤄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Never mind I'll find someone like you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을 닮은 사람을 찾을 테니까.

     

I wish nothing but the best for you

나도 당신이 잘되길 바랄게~     


나를 떠난 당신이지만 그 당신이 잘되기를 빈다는,      

당신을 닮은 누군가를 다시 찾겠다는( I'll find someone like you),       

나를 거절한 당신이지만 당신과의 기억을 원망과 분노로 색칠하지 않겠다는...


그 마음에는 어떻게 다다를 수 있을까? 

    

거절에 익숙한 사람은 없다. 

친해지고 싶던 친구에게서 외면당하고 온 힘 다한 계약이 물 건너가고 영혼을 다 쏟아부은 사랑이 떠나고 

설마 했던 사람이 망설임도 없이 ‘노우’라고 말하며 뒤돌아선다.      

자신을 거절한 사람, 그 거절이 남겨준 상처, 그것을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상처는 분노가 되고 분노는 집착과 증오, 복수의 마음을 자연스레 잉태한다. 


거절당한 후에 상대에게 품는 분노는 사실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절당한 나를 바라보는 것,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힘들다. 

상처받은 자존감. 선택받지 못한 나 자신임을 인정해야 하는 가슴 쓰림. 내가 못나서 내 능력이 달려서 내가 매력적이지 못해서라는 생각은 나의 열등감을 자극한다. 


거절을 맞닥뜨리는 순간 

위축되지 않는 것, 기죽지 않는 것, 그럴만했다고, 거절당해도 싸다고, 내가 문제라고 내가 나를 비난하지 않는 것,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  

   

나에 대한 사랑..이라고 뇌까려본다. 

나를 비난하지 않겠다는, 나를 불쌍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  

계약의 실패, 취업의 실패, 선택받지 못함,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나를 끊임없이 갉아먹게 놔두지 말자 싶다.      

나로부터 거절의 메시지를 받은 또 한 업체의 대표는 

“아쉽습니다. 미흡한 부분이 무엇이었을까요?”라고 되물어왔다.

비용 면에서는 매력적이었으나 구조 변경 디자인 제안과 설비 공사 과정의 투명성 담보 부분에서 다른 업체에 좀 더 끌렸다고,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정직하게 답을 보냈다.

나의 답신이 그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수많은 거절 앞에서 우리는 상처받고 쓰러지고 우울해한다. 

누군가를 향한 분노와 미움을 끌어올리며 나를 지키려 한다. 

이제 분노와 원망의 자리에 받아들임과 돌아봄을, 그리고 내 마음의 근력을 가져다 놓고 싶다. 

그 근력이 한 뼘씩 더 자라날 것임을 믿는다.   

   

사람이, 돈이, 꿈이, 사랑이, 나의 온 삶이 나를 거부하고 거절하는 것만 같은 순간들. 그 순간들이 나를 주저앉히고 나를 내팽개치지 않도록, 아니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를 소망해 본다.  

 

나의 거절에 품격 있게 답신을 보내준 신입 사원이 한참 동안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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