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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늘 Nov 11. 2024

'후회'를 위한 변명

집 정리했다. 지금은 집을 떠나 살고 있어 주인이 비어있는 아들의 방을 정리하는 날. 

초등학교 때 사용하던 미술도구, 누렇게 색 바랜 원고지, 자석, 나침반, 파일들... 정말 오래도록 묵혀 두었던 짐들이 상자에 담긴 채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오래된 파일 한 켠에서 발견한 아들의 일기장.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것이었다. 삐뚤빼뚤, 연필로 눌러쓴 손 글씨가 낯설게 눈에 들어왔다. 


- 엄마와 아빠가 싸웠다. 아빠가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방에 숨어 있었다. 무서웠다.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이 싸우지 말고 화목했으면 좋겠다.

- 누나가 아빠에게 막 대들었다. 아빠가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 누나는 엉엉 울었다.

- 나는 누나가 아빠에게 안 대들었으면 좋겠다. 아빠도 큰 목소리로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 나는 싸우는 게 싫다. 모두 모두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가족들 사이의 싸움 이야기가 여러 장에 쓰여져 있었다. 싸움이 잦았다는 말이다. 그 속에서 맘 졸이던 작은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눈물이 났다. 아. 이랬었구나. 내가, 나와 남편이, 아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극과 극인 남편과의 성격 차이, 30년 가까이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던 두 사람. 그렇게 다른 색깔을 지닌 30대 젊은 나이의 자아와 성정은 서로 물러설 줄 모르고 거의 매일 부딪혔으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육아의 과정에서 그 갈등은 극에 달했었다. 관계가 편안하지 못한 부부 사이에서의 육아는 당연히 삐그덕거렸고 그 속에서 생긴 상처들은 고스란히 어린아이들의 가슴에 생채기로 남았던 시절. 

당연히 첫 아이의 사춘기는 극 강의 난이도로 치달았고 그 사이에서 7살 터울 둘째는 엄마와 아빠 누나라는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 속에서 그 불안정하고 차가운 기운을 저도 모르게 매일 들이마셨을 것이다. 아이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떠올려본다,


나는 싸움이 싫다, 는 아이.  

요리를 좋아하는 아이.

타고난 마음결이 따뜻하고 평화로운 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늘 바쁜 직장맘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안아준 기억이 별로 없다. 늘 빨리빨리... 를 외치며 재촉하고 감독하고 지시하고 평가하고, 어쩜 난 그렇게 형편없는 부모였을까?

부끄러움과 자책감으로 나는 아이의 낡은 일기장 앞에서 어쩔 줄 몰랐다.

아, 이 일을 어찌할꼬?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러나 이제 다 지나간 오래전 일인데 이제 와서 어쩌나. 후회의 감정이 밀물 쏟아져 들어오듯 가슴 가득 번져왔다. 다시 어린 시절의 네 엄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네 앞에서 절대 남편이랑 싸우지 않고, 싸우고 나서라도 네 방문을 열고 네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안아줄 수 있는데... 지금 와서야 그런 생각을 하면 무엇하나

.     

주말에 아이가 집에 왔다.

- 현우야, 엄마가 네 방 정리하다 초등 2학년 때 일기장 봤어. 그때 엄마 아빠가 많이 싸웠나 봐.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 와 서야 생각하다니, 정말 미안하다. 나 정말 형편없는 엄마였네.

- 하하하, 뭘, 다 지난 걸 가지고 그래요?

- 엄마도 부모 노릇 처음 하는 거였잖아.


와, 이 리액션은 무엇인가? 또 한 번 눈물이 났다. 내 미안한 마음을 더 미안하게 만들어버리는 아이. 

등외 등급 수준의 육아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해 지금 내 앞에 있구나.

요즘의 MZ 세대라 그런가? 부모를 포함하여 타인을 대하는 그의 시선엔 편견이 없고 쿨하다. 


아이를 저렇게 키워준 것은 무엇일까? 

저런 생각을 하기까지 아이가 넘었어야 할 마음속의 산은 얼마나 많았을까? 

힘들고 외로웠을 시간을 건강하게 지나온, 아이 속에 있는 스스로 밀어 올리는 힘을 떠올려본다.  

    

아이의 일기장을 계기로 지난 시절 나의 육아를 본의 아니게 돌아보았다.

후회되는 지점이 너무 많다. 그리고 오늘 너무 늦었지만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그런 설문이 왕왕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당신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하는 3가지, 5가지, 10가지는? 유튜브에 널려있는 센세이셔널한 제목을 클릭해 본다.

남녀 공통으로 대부분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으로 나이 든 경우라면 젊은 시절에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걸, 그 남자(여자)랑 결혼하지 말걸, 그 여자(남자) 잡을 걸, 자식 교육에 좀 더 신경을 쓸 걸, 베풀며 살걸,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걸.... 등이 상위에 랭크된다.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대부분 예상되는 것들이다.  

   

실패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후회라는 말에 동의한다.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패자 부활전 같은 것도 없다. 복구할 수도 리셋할 수도 없다. 살아온 삶에 대한, 선택해 온 것들에 대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 형편없는 점수를 바라보며 눈물짓는 일만이 남아있다.   

그때 그 아파트를 살걸. 

내가 어쩌다 저런 놈하고 결혼했을까?

그때 공부를 좀 더 할걸.

아이들에게 그걸 해줬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합이다.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 들고 우리는 환호하거나 안도의 숨을 내쉬거나 땅을 치며 후회한다. 어떤 선택의 결과는 평생에 걸쳐 우리의 가슴을 억누르고 두고두고 꼬리표를 단 것처럼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후회’가 두려운 이유다.     

평생 함께할 사람에 대한 선택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번 실수한 부동산 투자는 그 막대한 손실은 어찌할 것인가?

육아나 자녀 교육은 또 부모에 대한 학년별 성적표인 양 현재 진행형이다.

소심하고 불안도가 높은 나는 무슨 선택이든지 나의 그것에 대하여 후회를 하곤 한다.  

    

그런데 어쩔 것인가?      

'후회'란 항상 그 시선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 

후회, 생각해 본다. 어쩌면 후회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후회를 한다는 건 돌아보는 힘이 있다는 거고 다시 앞으로 내디딜 힘이 있다는 거 아닐까?

후회할 수 있음은 인간만의 능력이고 특권이다.     

문제는 상황정리다.     

나는 ‘지금, 여기, 를 인정하라’는 말을 좋아한다. 모든 출발의 시작 점은 지금, 여기에 대한 인정이다.      

내 모습이 지금 이건대,

내 남편이 이 사람인데,

내 아이가 이 모습인데,

내 아파트가 이건대,

내 돈이 이 것밖에 없는데...     

그 상황에 대한 인정이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거기서 시작하자, 싶다. 인정해야 그다음 걸음을 우울하지 않게 내디딜 수가 있다.

통째로 새로 바꾸거나 시작할 수 없는 삶의 조건들, 모습들. 

고쳐나가는 거다. 공부 안 했던 것을 후회한다면 이제부터 공부하면 된다. 매 수능 시즌에 최고령 수능 응시자는 그래서 감동을 준다. 그 나이에 그 시험 봐서 무얼 하려고? 그러나 수험표를 들고 활짝 웃으며 영문과에 입학하여 공부할 꿈에 행복하다고 웃는 할머니를 기억한다. 

솔직히 남편이 맘에 안 들고 미울 때도 있지만 안쓰럽고 고맙고 미안할 때도 찾아보면 없지 않잖은가? 

그걸 찾자, 싶다. 찾으면 보일 거다. 

아이, 사춘기 시절 그렇게 간섭하고 통제했다면 이제 어른 대접 확실하게 하자. 

               

인정하자. 수선하자.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그게 최선이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던 지난 시절의 내 육아에 대하여 나는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 나는 독서 모임에 간다. 흘려보냈던 시간들, 아무것도 아니 게 만들었던 나의 일상이었음을 후회하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 한다.

이 선택이 나중에 후회로 남을지라도 지금 나는 최선이지 않은가?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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