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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 Apr 29. 2024

엄마가 아파 마음 아픈 바보농부

부천에서 같이 사시던 시어머니께서 안성으로 간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손주가 스무살이 되어 대학생이 되고나서는 이제 본인은 혼자 농사를 짓는 아들의 밥을 지어 주시겠다며 안성으로 가셨다. 어머니 맘은 그러하셨지만 80세 중반을 훌쩍 넘어섰고, 무뤂 수술로 성하지 않은 다리는 더 기능이 나빠지셨다. 밥을 짓는 일도, 걷는 일도 점점 더 어려워지셨다. 조금씩 걷고, 조금씩 집안 일을 하셨는데, 기억력은 점점 나빠지셨다. 


올해 초에는 티비를 보지 않으시면서도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셨다. 티비 보는 것도 귀찮다는 말이 예삿말로 들리지 않았다. 손주 녀석들 이름도 헷갈려 하시고, 몇년도인지 가물가물하해 히산다. 몇년도의 음력으로 언제쯤인지까지도 기억하시던 분이다. 그 뒤로 노화가 점점 더 심해지시면서 최근에 치매 진단을 받고 요양등급을 4등급으로 받아 재가요양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재가서비스 신청을 앞두고 있던 목요일 남편과 통화하니 어머니 치매 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했다. 횡설수설하시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여, 우선은 재가를 신청하여 어머니 돌봄을 준비하면 내가 토요일에 가보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금요일. 어머니 건강이 걱정이 되어, 어머니께 직접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전화를 받으신다. 목소리에 힘이 없고 병원갈 준비를 한다고 하신다. 얼른 전화를 끊고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어머니가 병원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응급차를 불러 놓고대기중이라고 했다. 4년 전처럼 다시 뇌경색이 오셨구나 싶었다. 


바로 다음 날 차를 끌고 안성으로 갔다. 병원에 게신 어머니를 만나뵈었다. 가벼운 뇌경색인 것 같은데, 아직 검사중이었고 간병인이 필수인 병동으로 가야 한다고 하여 남편도 간병인께 맡겨 두고 나와 있는 상태였다. 어머니를 뵈려면 간병인이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나와야 가능했다. 어머니 손을 꼭 잡아 드렸는데, 기력이 많이 없으시다. 눈을 감은 채로 이야기하시고, 말이 나왔다가 안나왔다가 하신단다. 어머니 손을 꼭 잡고 30여 분 있다가, 우리는 다시 안성 집으로 왔다. 


어머니 안 계신 안성의 밤이 저물고, 다리 아픈 어머니를 위해 남편과 큰누나가 만든 상자 텃밭 속 식물들은 가녀리지만 힘있게 자라고 있다. 남편은 원래 오늘 고추밭을 만들 작정이었는데, 어머니 아프신 상황에 고추밭을 만들기 어려울 것 같다고 이번 농사에 고추는 포기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있겠냐고 위로하고, 나는 다시 부천으로 왔다. 


남편이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 들이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밤에 남편이 혼자 소주를 마시면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멘탈이 나갔다고 했다.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못해드린 것만 생각이 났나보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두려움도 같이 있나보다. 엄마에게 자신이 짜증냈던 기억이 떠올라 죄책감이 드나보다, 나는 "같이 사는 자식이 짜증내지, 멀리 사는 자식이 짜증내냐!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 어머니 모시면서 같이 산게 효도여" 라고 위로했지만, 전화기 너머 눈물 흘리는 것이 느껴진다. 상남자처럼 생겨가지고는 여리여리 한 마음이 있다. 


해가 지듯 언젠가는 저문 날을 맞이하게 될 사람의 생. 부몬의 늙어감, 연약해짐, 그리고 헤어지게 된다는 무서움. 그런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도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슬픔을 겪게 될 남편을 위로하고 함께 그 시간들을 밎이할 준비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합 활동을 하면서 돌봄과 죽음에 대해 미리 접하고 마음에 지도를 그릴 기회가 있어서인지, 나는 좀 더 덤덤해질 수 있고 남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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