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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RDY Jun 22. 2024

#14 이유있는 한가함

A 카페에서 토요일 오후를...

뜨겁게 달구어진 대기에 쏟아지는 빗줄기는 열기도 함께 씻어내린다. 오랜만에 강렬한 햇살 대신 비에 흠뻑 젖은 나무도 생기가 도는 듯 잎사귀에 힘이 느껴진다.     

 

 오는 한가한 토요일 오후, 지금 A 카페는 컵을 씻고 있는 직원, 환자복을 입은 손님을  면회 온 두 명의 지인, 아이에게 허니 브레드를 작게 잘라 주고 있는 엄마, 혼자 커피를 즐기고 있는 손님과 낮게 흐르는 음악이 있다. 아! 그리고 내가 있구나.  

   

어쩐지 오늘은 따뜻한 라떼가 비 오는 날씨와 묘하게 어울린다. 부드러운 거품이 먼저 입술을 촉촉하게 적시고 커피가 혀끝에 따스하게 닿는 느낌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의도적으로 내 감각을 깨워보는 것이다.      

조용히 통유리 너머 세상을 바라본다. 한 번씩 지나가는 바람조차 느껴지지 않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도로에 닿기 바쁘게 튀어 오르며 물방울을 만들고 다시 땅으로 내려앉아 웅덩이에 고이거나 흘러간다.

     

오늘 비는 참 이쁘다. 소리 없이 내리는 한겨울 눈 같다. 벌써 폭염의 징조가 보이는 날씨에 미리 지쳐가고 있었던 걸까? 이 비가 너무나 반갑고 고맙고 이쁘게 보이는 이유가.     


구겨진 면티에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 차림으로 들어와 커피를 포장해 가고, 기다리던 연인이 들어오며 눈이 마주치자 웃음이 번지는 커플도 있고, 가로수 잎사귀에서는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도 한다. 또 비둘기 두 마리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카페 앞에서 얼쩡거리는 것도, 도로 한 쪽에 멋지게 핸들링하며 주차하는 차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으니 별일이다.      


그냥 커피를 마시고 A 카페 유리창 너머 세상을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이 느낌. 너마저 비 때문이려나. 그래 다 비! 너 때문으로 하자! 들고 온 3권의 책은 덩그러니 찬밥이다. 이 느낌을 좀 더 즐기고 너희를 만나주마.

    

사실 한없이 여유 있는 사람처럼 앉아있지만 이유 있는 한가함이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어떤 실마리가 찾아지길 바라며 이러고 있을 때가 있다. 지금도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궁리 중이다.      


첫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고 있고, 어떻게 풀어야 내가 원하는 글을 마지막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잘 끌고 갈 수 있을지 말이다. 내 생각을 뒷받침해 줄 문장도 책에서 찾아내어 인용문으로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대부분은 글을 쓰기 전에 무슨 책에서 가져올 것인지 머릿속에 이미 다 정해진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몇 권은 뒤적여야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게 될 것 같다.  

   

써야 할 글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시작을 못 할까? 내가 좋아하는 주제여서 오히려 접근을 못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 본다, 자칫 모호하게 전달되는 것이 싫어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글을 쓸 수 없게 꽉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쉽게 말하면 과하게 힘을 주고 있고,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거겠지.      


잘하고 싶을 때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지금처럼 시작에 애를 먹기도 한다.      

마음에서 욕심을 버리고 결과에 어떤 의도가 들어있다면 그것을 비워 보자. 가볍게 쓰자.

힘을 빼고 시작하자!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글을 써야 한다. 모든 이유를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는 한 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Deadline. 언제까지라는 마감 시한은 강력한 처방전이다. 어휴,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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