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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RDY Jun 21. 2024

#13 아주 짧은 여행

함께해서 좋은 사람

오랜만에 지인과 산으로 향한다. 이 지인과는 처음 온 산. 정확하게 말하면 산 밑이라고 해야 할까? 등산은 다음으로 미루고 산 밑 산책길을 한껏 여유롭게 걷는다. 은은하게 바람 따라 날리는 나무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며 숲속에 머물러 본다.      


계곡물을 바로 뒤에 두고 그늘이 잘 드리워진 벤치가 마침 비어있다.

벤치가

“어서 와. 앉아 봐!”

라고 유혹을 해 주어서 얼른 가 앉는다.

.      

우리는 풀어짐이란 이런 것인가 싶을 정도로 나른하고, 몽롱하게 몸의 긴장이 풀어지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좋다. 둘이 되풀이하는 말은 “참 좋다.”     


고개를 위로 한껏 젖히자 한창 초록이 짙은 나뭇잎들이 겹치고 겹쳐서 하늘을 가리고 있다. 햇살이 비추는 시간이었다면 나뭇잎들 사이로 빛들이 쏟아져 내렸을 텐데 멀리 하늘만 배경이 되어 준다. 그것마저도 좋다.

    

벤치 뒤는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운치가 있다고 해야 할까. 비가 한동안 오지 않아 물이 많지는 않지만,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는 걸 보면 물고기가 살기에 충분한 환경인가 보다. 어른 손가락 크기의 물고기들이 빠르게 헤엄쳐 다니고 있는데 제법 그 수가 많다.


그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지인에게 진지하게 물어본다.     


“산에서 바로 내려오는 물이라 깨끗해서 1급수에서 사는 물고기들도 있겠다. 그런데 지저분하던 계곡을 정화 시키고 나서 사라졌던 고기들이 갑자기 나타났다고 하잖아. 1급수에만 살던 물고기가 수십 년간 사라졌다 어느 날부터 보이기 시작했다면 그 물고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러게.”     


상류 어딘가에서 꼭꼭 숨어 살다가 혜성처럼 나타났나? 그래, 이 시간에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지금껏 누구 앞에서 이렇게 하품을 많이 한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하품이 연거푸 난다. 저 위쪽에 있는 정자에는 중년의 부부가 자리를 펴고 화투를 맛깔나게 치고 있던데, 탐이 나는 자리다. 자리 펴고 딱 10분만 누워있을 수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었을 듯.     


지인과 다음에는 어디로 갈 것인지 계획을 세운다. 아직은 우리가 사는 도시 근처 어딘가로 가겠지만 뭔가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새로웠다.  

   

누구와 다음을 기약한다는 것은 오늘의 이 시간이 불편하지 않았고 다른 시간도 함께 하고 싶어진다는 뜻일 것이다. 내가 좋았던 것처럼 지인이 느끼기에도 내가 괜찮은 파트너였나 보다.   

   

“우리 꽤 괜찮았지? 다음에 또 가자!”     


지인을 내려주고 나는 일찍부터 막히기 시작한 시내를 통과해 집으로 향한다. 평소 3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1시간이나 걸려 도착을 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으니 모든 것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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