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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r 29. 2024

생애 첫, 아빠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사가 자연스러워야 하는 이유



오늘 하루종일 다 같이 있었네.



 제사가 끝나고 익숙한 일상에 기댈 즈음 들려온 엄마의 목소리. 그렇다. 거의 하루종일 붙어 있었던 게 얼마만인지. 살짝 열어둔 대문으로 들어온 찬기운을 모두 무색하게 만드는 따스한 말 한마디였다. 처음 하는 제사라 그 누구도 요령껏 해내지 못했지만 그래서 당연한, 우리의 엉성한 모습들이 즐거웠다.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제사 준비를 위해 오랜만에 찾은 전통시장. 반가웠다. 중간중간 비어있는 몇몇 상가들도, 주차 자리를 찾기 어려운 게 당연한 것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멀미 기운과 어제의 알코올들도. 그 어떤 것도 불편하지 않았다. 기분은 하늘처럼 맑았다. 시장에는 갖가지 한식들이 활짝 펼쳐져 있고 저마다 재미난 냄새를 풍겼다. 시장 소리는 좁디좁은 골목을 거쳐갈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사장님의 오랜 친절함과 '깐 밤 있어요?' 묻는 족족 그 물건이 튀어나오는 풍성함은 작디작은 가게를 커다랗게 만들었다.


 즐거웠던 장보기 시간. 하지만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절을 올리는 법만 알았지, 어디에 어떤 음식을 둬야 하는지 지방은 어떻게 쓰는지 향은 언제 피우는지 어떻게 마무리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네이버에서도 하는 이야기는 제각기 달랐다. 결국, 제사는 하는 사람들 맘이라고. 즉석에서 정하고 자연스럽게 진행했다. 그렇게 첫제사는 마무리되었다.


얇게 피어오르는 향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고 한식은 부드러워서 부담스럽지 않았다. 제사의 적막에는 떠난 사람을 위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제야 제사는 남겨진 자들을 위한 시간이라는 말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제사는 유동적이어야 한다
결국 지내는 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만약 제사를 떠올렸을 때 부정적인 감정이 동반된다면 그건 더 이상 제사라고 할 수 없다. 본질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제사의 본질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나누는 것. 제사가 하나의 수단이 아닌 누군가의 권력으로 고정되어 버린다면 그건 권력을 부리는 사람의 마음을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직 슬픔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해소 못한 건 아닐까? 그 사람의 어떠한 감정이, 어느 시점에서 흐르지 못하고 멈춰버린 건 아닐까? 부정으로 응어리진 감정은 쉽게 사람을 우매하게 만든다. 본질에서 멀어진 제사는 강요와 노동, 누군가의 부담과 희생이 된다. 하지만 감정이란, 마음에서 수반되는 것이라 절대 단편적인 물질로 해결할 수 없다. 차마 풀지 못한 슬픔이 있다면 제사라는 수단을 잘 활용해 같은 감정을 나누는 사람들과 공감으로써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고인을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런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 그렇게 본질에 가까워진다.



 알코올이 오가는 늦은 식사 시간, 외할아버지의 한 마디에 와르르 웃어버린 어느 저녁. 외할머니와 친척 그리고 가족들 모두와 함께 와글와글 찍은 인생 네 컷 한 장. 본질을 깨닫고 나니 사랑과 따뜻함이 더 선연하다.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함께하는 순간.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부정보다 보이지 않는 긍정에 집중하고 또 집중하려고 하면 생각보다 쉽게, 나아갈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걸. 정말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을 아쉽게 느끼지만 한편으론 삶에 대한 진정성을 찾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감사하다. 어쩌면 아빠로서의 마지막 인생 교육을 주고 간 건 아닐까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편안하게 마무리할 밤들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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