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만두, 짬과 권력의 상징
냉동만두. 입대하기 전에는 만두를 사 먹어본 기억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만두는 존재감이 희미한 음식이었다. 학교 급식에서 가끔 나오면 먹는 정도였고, 만두를 메인으로 한 만둣국 역시 굳이 찾아 먹지는 않았던 것 같다.
뭐랄까. 얇은 피에 고기나 김치를 채워 넣어 굽거나 찌거나 튀기는 방식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특별한 인상을 남기기엔 부족했다. 밥으로 먹기엔 어딘가 부족했고, 그렇다고 국으로 먹기에도 애매했다. 그나마 PC방에서 간식으로 먹기엔 무난했지만, 그마저도 늘 라면에게 자리를 내주기 일쑤였다. 만두는 굳이 찾게 되는 음식은 아니었고, 만두가 기억에 남을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러나 입대 후, 나는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토록 존재감 없던 만두가, 병사들 사이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만두는 군대에서 전부나 다름없는 ‘짬’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PX에서 냉동만두는 소위 말하는 ‘짬’이 되는 상병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PX 냉동고 안에 만두는 누구에게나 손에 닿을 듯 공평한듯 보였지만, 적어도 필자가 복무하던 시절에 냉동만두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음식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군대에서 오래 버텨낸 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처럼 보였다.
이등병 시절, 나는 이 만두가 너무 먹고 싶었다. 입대를 추운 겨울에 했었기에, 더욱 배고팠던 것 같다. 식사의 질은 좋지 않았고, 부식은 늘 부족했다. 월급마저도 10만 원 남짓하던 시절이었다. 부족한 허기를 채우려면 영내마트, PX에 가야 했다. 그러나 이등병은 PX도 혼자 갈 수 없었다. 아이처럼 누군가 데려가 줘야 했다. 그렇다고 동기들끼리 PX에 가면, 선임병들의 타겟이 되어 '갈굼'을 받기 일쑤였다. 괜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눈치가 보였고,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필요한 것만 집어 들고, 계산을 마치면 재빨리 그 자리를 빠져나와야 했다. 최소한 일병쯤 되는 선임병이 함께 있어야, 그곳에 조금이라도 더 머무를 수 있었다. 우리가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치약이나 비누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가끔 초코파이나 봉지과자를 하나 집어 들기도 했지만, 그것으로는 허기를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혹여나 큰맘 먹고 빅팜이라도 하나 집어 들면, 판매병마저 계산을 미루며 나를 한 번 쳐다보곤 했다.
“니 짬에 이걸 먹냐?”
대체 그놈의 짬이란건 군대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단순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가지 맥락이 담겨 있다.
첫째로 짬은 군대에서 배급하는 식사를 지칭하는 군대식 은어다. 사회에서는 급식이라고 하지만, 군대에서 병영식이라 칭한다. 흔히 말하는 '짬밥'이다. 그런데 먹고 남은 음식물, 즉 '잔반'을 가리킬때도 '짬'이라는 말을 쓴다. 잔반 처리를 '짬처리', 잔반통을 '짬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둘째로, 짬은 군대에서 복무기간이나 경력을 뜻한다. 병영식인 ‘짬밥’을 오래 먹을수록, 그만큼 군대에 오래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짬이 오래됐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군대라는 세계에서 버텨낸 시간의 증명이자, 일종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졌다. 예컨대 “네 짬에 이 정도는 해야지.”
이 말은 기대이면서도, 동시에 책임인 것이다. 반대로 짬밥을 오래 먹었음에도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사람들은 "짬을 거꾸로 먹었다"며 비하하기도 한다.
끝으로 짬은 '서열'이자 '권력'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군대는 계급이 우선이지만, 이 '짬'이라는 것을 결코 무시할 순 없다. 짬은 병영생활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등병과 일병은 관등성명을 또박또박, 병장은 전역이 가까워질수록 말끝이 흐려지는 현상 같은 것들이다.
PX의 냉동만두는 '짬의 정점'에 서 있는 간식이었다. 군대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그 만두에는 '짬'이 만들어내는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군대 내 PX라는 공간은, 병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그 좁은 공간 안에는, 모두를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몇 개의 테이블만이 놓여 있다. 그 자리들은 자연스럽게,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공간이 아님을 보여준다. 더욱이 대대원 전체가 사용하는 전자레인지는 고작 두세 대에 불과하다. 즉, 그 제한된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렇다. 군대라는 환경 속에서, 제한된 공간과 희소한 자원, 그리고 ‘짬’이 맞물리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냉동만두는 단순한 간식을 넘어 ‘짬의 상징’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던 ‘짬찌(군대은어)’였던 나에게도, 드디어 냉동만두를 접할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날, ‘짬’이 되는 분대장이 분대회식을 하겠다며 분대원 모두를 PX로 데리고 간 것이다. 분대장은 우리가 만두를 먹을 수 있는 것도 다 자기 덕분이라며, 한창 으스대고 있었다. 사실 회식이라고 해봐야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보잘것없는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냉동식품 봉지 가운데를 길게 찢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운 뒤 이쑤시개로 하나씩 찍어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군대에서 처음 맛본 ‘냉동만두’는, 나에게 묘한 감정을 남겼다. 솔직히 맛만 놓고 보면, 그리 훌륭한 음식은 아니었다. 찜통에 찐 것도 아니고, 물 한 방울 넣지 않은 채 전자레인지로 그대로 데운 만두였으니, 맛이 좋을 리 없었다. 만두피는 딱딱한 밀가루를 씹는 듯한 식감이었고, 만두소는 수분이 빠져 퍽퍽했다. 따뜻하다기보다, 그저 데워진 음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짬’이 허락하는 경계 안에 발을 디뎠다. 평범한 냉동만두가 군대에선 짬의 상징이 되었듯이.
그렇게 냉동만두는, 나에게 어떠한 맛보다 특별한 감정으로 기억되어 있다. 2026년을 맞이한 오늘에도, 냉동만두는 여전히 PX의 인기 식품이다. 그러나 이제는 충분한 조리기구와 더 다양한 식품, 그리고 나아진 병영문화 속에서, 냉동만두가 ‘짬’의 상징이던 시절은 점차 한 세대의 기억으로 남아가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냉동만두는, 내가 처음으로 그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던 순간의 기억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