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교사 윤노랑쌤의 Short Essay
안녕하세요! 고등학교 전문상담교사 윤노랑입니다
오늘은 조금은 진지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긴글 주의)
며칠 전 제 블로그에 한 신규 상담선생님께서 장문의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제가 신규교사로서 고군분투하며 매일 저녁 퇴근하고 집에서 울고불고,, 학교 때려친다 어쩐다,,, 했던 때가 생생하게,,, 생각나네요�
신규 선생님께서 해주신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는 실무자"라는 표현이 정확히 우리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느낌.
며칠 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고민 상담을 하면서
"힘든 학생들을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야"라고 했던
저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 아이에게 시간과 감정 노력을 투자하여 학생의 성장을 도와야하는데 현실은 수많은 행정업무에 휩싸여
오히려 상담 노쇼(No Show)가 발생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문을 작성하는 현실이라니..
(너무 지나치게 솔직한가요?)
그래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최대한 솔직하게 적어보려고 합니다.
우리 학교에서 페르소나 가면을 쓰고 있는 것 만으로도 지치기 마련이니까요
신규 선생님께서 3가지 질문을 주셨습니다.
1. 상담교사라는 직업적 정체성
2.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노력
3. 상담교사로서의 현타 + 극복 노력
오늘은 그 첫번째 질문에 답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세번째 질문과도 연결되는 내용이네요!)
상담교사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했는가
들어가며>
저는 사범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본전공인 역사교육을 살려 역사교사가 되어 역사를 가르치고 담임을 맡으면 어땠을까 종종 상상해봅니다.
역사수업을 준비하고 수업시간 50분을 가득 채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행정업무를 하면서 쉬는시간 점심시간에는 담임교사로서 학생, 학부모와 상담을 하겠지요
상담교사로서 저는
개인상담을 준비하고 상담시간 50분을 가득 채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행정업무를, 쉬는시간, 점심시간에는 상담교사로서 학생,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제가 사범대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한, 애초부터 교사를 지망했던 사람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상담'교사'이기 때문에 상담자보다는
우리가 하는 일은 '교사'에 가깝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자'가 아닌
학교에서 학생을 마주하는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찌 생각해보면, 다른 담임선생님들이 그러하시듯, 우리도 학생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일들을 하루하루 처리하기 급급한 교직생활을 하고 있는게 일반적일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상담을 하고, 통찰을 이끌어내고, 매주 1회기씩
꼬박꼬박 사례개념화에 기반을 둔 정기상담을 하기에는 학교현장은 전투기지와 다름이 없어서,,
우리의 불안정한 학교 상담세팅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청소년은 현실적으로 폭풍같이 흔들리고 (갈대 아님) 하나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저와 위클래스에서 상담할 때는 그렇게 죽고싶어하고 힘들어하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학생이
학교축제 오디션에 참가하고, 학급 회장을 하고, 동아리 시간에 그렇게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아... 내가 상담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교사'로서 수업에 들어가고, 다른 선생님들과 소통하는 이 특별한 학교세팅이
어떻게 보면 그 학생 내담자를 보다 입체적이고 면밀하게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전 제가 상담자이기 전에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라고 생각하고 그게 사실이고 현실이라 봅니다
그래서 교사로서 가지는 수많은 부작용을 우리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치이며 소소한 사안처리에 시달리는 것
우리는 어찌보면, 상담자이자 교사인 제 3의 직업, 특별한 존재일 수 있겠습니다.
하나로 직업을 정의내리기 보다는, 다각적이며 입체적으로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상담자와 교사의 마인드셋 두가지를 가지고 적절히 섞어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제 학교생활을 돌이켜보자면,
상담시간 50분 동안에는
“상담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지만
상담을 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에는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교사는 수업시간에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이듯,
상담교사는 수업시간에 상담을 하는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동료 선생님들과의 유대감을 느끼고
교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지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마치며>
이번에 서울특별시교육청 본청 연수에서
한 아동청소년심리학과 교수님께서 해주신 조언을
빌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상담의 종류에는 무조건 공감과 포용의 상담도 있지만
지시적이고 교육적인 상담도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후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런 딱딱한 상담이 상담이 아닌 것은 아니다.
상담의 한 방식일 뿐이다. 내담자 사례에 따라서 전자와 후자를 적절히 구분하여 활용하면 된다.
제가 몇년 간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나는 “교사”라는 것.
상담을 우선에 둘 것인지
교사를 우선에 둘 것인지 고민하기 보다는
상담하는 시간에는 “상담”에 올인하자.
그러나 가끔은 지시적이고 교육적인 상담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학교현장의 특수성이다.
상담 외적인 시간에 나는 “교사”이다
학생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것이 교사의 현실이지만 그것이 상담교사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상담교사라고 위클래스에 문제학생을 일임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고 바로잡아야하는 악습이지만요.
오늘의
길고 지극히 개인적이었던 글을 마무리해봅니다
위의 내용은 저의 개인적 의견이니
다른 선생님들과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신규발령 때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변화했듯
몇년 뒤에 제 직업적 정체성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저의 과도기적인 정체성 혼란임을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선생님들이 생각하시는 상담교사의 직업적 정체성은 어떤 것인지
요즘 어떤 고민을 가지고 계신지 공유해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