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고의 교사 Oct 13. 2023

2022. 7. 10. 일요일. 육아일기.

쉼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 단지 아파트 내에 근린공원이 하나 있다. 그곳은 조성이 잘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다. 산책로가 있는 커다란 운동장이 있으며 공용 운동기구가 있다. 사람들은 산책로를 걷기도 하고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한다.


  공원 중앙에는 분수대가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 분수대가 가동된다. 아이들은 분수대에서 나오는 물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더위를 식힌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분수대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매우 즐거워 보인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는 모습을 보고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덩달아 좋아진다. 아이들의 행복한 기운이 나에게 스며들고 있다.


  오후에 도담(첫째), 봄봄(둘째)이와 분수대에 갔다. 그곳에서 우리 보다 먼저 도착한 도담이 친구 가족을 만나서 함께 놀았다. 같은 유치원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낸 친구라서 도담이와 친구(이하 '철이'라고 명칭)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총 놀이도 하고 물속을 뛰어다녔다. 두 녀석은 나에게 물총을 쏘기도 했는데 내가 물총에 맞고 과장된 반응을 하면 아이들은 마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깔깔깔 웃었다. 그다지 재미있지 않은 아빠의 개그를 아주 격하게 반응해 주어서 순간 코미디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 만을 위한 코미디언.


  즐거운 시간에 몰입해서였을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분수가 끝날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아이들이 추울 것 같아 마른 옷으로 갈아입히고 나와 아내는 짐을 정리했다. 정리를 다 끝낸 후에 집으로 향하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도담이와 철이가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서로 속닥속닥 거리더니 나에게 말했다.


  "아빠! 나 철이랑 집에 가서 축구할 거예요!"

  "응? 이제 집에 가서 쉬어야지~"


  대화가 끝나자마자 두 녀석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봄봄이를 챙기느라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도담이랑 철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철이 부모에게 두 아이를 봤는지 물어봤다. 그들은 두 아이를 못 봤다고 대답했다.


  나와 아내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철이 부부에게 구역을 나누어 아파트 주위를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걱정되고 긴장되는 마음에 심장이 쉴 새 없이 요동쳤다. 마치 심장이 귀에 있는 것처럼 쿵쾅 거리는 소리가 귀까지 들렸다. 나는 뛰는 심장보다 더 빠르게 아파트 단지를 뛰어다녔다. 집 앞에 있는 놀이터와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 모두를 둘러봤는데 두 아이는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혹시…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최근에 현관문 비밀번호를 외워 우리 가족이 외출할 때면 언제나 앞장서서 출입문을 열어주던 도담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이 머릿속에서 스치는 순간 집으로 내달렸다. 실낱 같은 기대를 품고 달렸는데 집에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나와는 다른 구역을 살펴보고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시간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무심하게 흘렀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을 답답해져 갔다.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헤짚어 놨다. 실종에도 골든 타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보다 시간이 더 지나면 도담이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감이 내 머릿속을 서서히 잠식해 가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도담이를 절대 찾을 수 없지… 힘내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있는 힘을 다해 뛰면서 그동안 다녔던 곳을 차례차례 다시 확인했다.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며 하나씩 확인했다. 어느덧 모든 확인이 끝나고 마지막 차례인 집 바로 앞에 있는 놀이터만 남았다. 


  '이번에도 도담이가 없으면 절망이 나를 집어삼킨다.'


  놀이터까지 100m, 50m, 30m, 10m 조금씩 놀이터의 출입구가 보인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도 없었던 두 아이가 정말 해맑은 표정을 하고 축구를 하고 있었다. 순간 모든 긴장과 예민해져 있던 감각이 봄을 맞이한 눈처럼 녹아내렸고 곧이어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았다. 두 아이를 찾던 짧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 아이들이 분수대에서 우리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빠! 나 추구공 가지고 놀이터에서 더 놀 거야!"


  나는 도담이에게 곧바로 다가가 혼을 냈다. 앞으로는 아빠, 엄마만 두고 혼자서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도담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곧이어 철이랑 축구하러 가도 되냐고 물은 뒤 축구를 하러 가버렸다.


  재미있게 축구를 하는 두 아이를 보고 곰곰이 생각했다. 아이가 없어진 사실에 집중해 걱정하느라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사실 도담이가 한 행동은 7살 아이가 하기에는 대단한 일이었다. 분수대가 있는 공원에서 집까지 아빠, 엄마 없이 와서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축구공을 꺼낸 뒤에 문을 잠그고 놀이터에 가서 아빠, 엄마가 올 때까지 축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 컸구나…'  


  이제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아빠의 보살핌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시기, 부모로부터 하나, 둘씩 독립해 나가는 시기 말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일을 나에게 혹은 엄마에게 의지하지만 도담이가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감에 따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아빠, 엄마라는 둥지를 벗어나 완전히 독립한 한 마리의 새가 되겠지…


  도담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 아빠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하더라도 도담이가 힘들고 지칠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고 싶다. 자주는 아니겠지만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나에게 언제든 찾아와서 부담 없이 쉬고 갔으면 좋겠다. 도담아! 너에게 쉼터가 될 수 있는 아빠가 되어 보도록 할게! 사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2. 7. 4. 월요일. 육아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