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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고의 교사 Oct 20. 2023

2022. 7. 25. 월요일. 육아일기.

이해의 폭

  나와 아내가 출근하는 학교가 방학을 시작했다. 학교가 방학을 하면 우리 부부는 반드시 학교에 오후 4시 이후까지 남아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학기 중 보다 일찍 유치원에서 하원시킨 후 도담(첫째)이와 봄봄(둘째)이를 유치원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 데리고 간다. 그 이유는 유치원에서 사용하고 남은 아이들의 잔여 에너지까지 모두 소진해 버리기 위해서이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일찍 잠들고 육아퇴근을 조금이라도 빨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작성해 놓고 보니 못된 아빠의 향기가…).


  봄봄이와 유치원 같은 반 친구 중에 어떤 남자아이가 있다. 유치원에서 하원할 때나 놀이터에서 놀 때 그 아이의 행동을 보면 우리 봄봄이를 적극적으로 피하거나 싫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봄봄이가 놀자며 그 아이에게 다가가면 "싫어!"라고 말하며 피하고 내 딸을 떼어내려고 한다.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봄봄이가 재차 다가가 놀자고 말하면 "따라오지 마!"라고 말하며 도망가버린다.


  봄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하원할 때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서로 손을 잡고 선생님 말씀을 들은 후 인사하고 헤어진다. 선생님 주도하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면 선생님께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한 명씩 인사하고 아이를 부모에게 인계한다.


  아이들이 긴 기다림 끝에 사랑하는 부모를 만나는 행복한 유치원 하원시간.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서 있는 봄봄이가 나를 보고 아침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내 안에 일렁인다. 봄봄이의 환한 미소를 보며 다가가고 있는데 사랑스러운 나의 딸 옆에 위에서 언급한 그 녀석(아빠의 마음으로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동그랗게 원을 만든 모습을 확인한 후에 종례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OO반~ 모두 옆에 서 있는 친구의 손을 잡아주세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봄봄이는 옆에 있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손을 잡기 위해 계속 손을 뻗는 봄봄이와는 반대로 그 녀석(?)은 내 딸의 고사리 같은 손을 계속 뿌리쳤다. 봄봄이는 손을 잡기 위해 몇 번이고 시도를 했지만 옆에 있는 그 녀석(?)이 계속해서 손을 뿌리치자 결국 포기했다.


  손을 잡기 위해 시도하고 거절당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놀이터에서 우리 봄봄이에게 하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서른 중반을 넘어선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정말 웃기지 않은가? 그 남자아이 입장에서는 우리 봄봄이 말고 다른 친구랑 놀고 싶을 수도 있는데, 혹은 그냥 손을 잡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비이성적으로 화가 나는 나 자신이 정말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감정이 부모의 마음일까? 정확하게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내 아이가 누군가로부터 거절당하고 상처를 받는 모습을 지켜볼 때 느낄 수 있는 묵직한 아픔이다.


  결혼하기 전, 심지어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학교 폭력과 관련된 사건, 사고를 접할 때 단순히 '아이가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오늘 내가 겪은 일처럼 정말 별일도 아닌 일에도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아이가 성장하면서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면, 그때 겪을 부모의 마음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오늘 나의 아이 덕분에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한 겹 넓어졌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조금은 확대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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