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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길온 Gilon Sep 23. 2022

자기개발에 대한 공모전

플스를 향한 사익적인 글쓰기


 왜 우리는 자기개발을 해야 하는가? 자기개발의 목적은 어제의 나보다 더 성장한 오늘 나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다. 하지만, 성장에는 그에 걸맞은 인내와 절제라는 고통이 따른다. 고통과 노력 없이 자기개발 할 수 없는 이 구조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작하기를 계속해서 미루고 두려워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도 펜을 드는 것보다 유튜브를 보는 것이 그리고 책을 펼치는 것보다 게임을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즐겁다.


 아마 이 세상에는 성장통을 견디기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더 유능해지고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노력과 능력이라는 것을 제공하는 대신 그에 따른 보상을 돌려받는다. 더 큰 능력은 더 좋은 보상을 준다. 우리가 뭘 제공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가져갈 몫이 정해지니, 자기개발은 사람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고 따라서 암울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작년 7월 말, 내 이름 앞에 새로운 단어가 붙었다. 그 당시 나는 입대라는 선택지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이 비참한 운명에 체념한 210번 훈련병이었다. 과거 7년간의 기숙사 생활 경험이 새로운 장소와 사람에 적응하는 것에 많은 부담을 덜어줬다. 그렇지만,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오게 된 이 군대에서 나는 앞으로 남은 18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18개월이라는 시간은 나한테 거의 존재하지 않고 죽은 시간과 다름없었다. 처음에 내가 찾은 해결방안은 바로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이다. 환경이 이래서, 저 사람 때문에, 운이 안 좋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 원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풀릴 수 없는 더 큰 현타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렇게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했고 자기개발을 멈췄다.


 일과가 끝나고 어느 때와 다름없이 sns를 하면서 시간을 죽이던 와중에 우연히 보게 된 한 글귀가 앞으로의 군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도문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이시여,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

이 기도문은 나한테 뒤통수를 크게 맞은듯한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군 복무라는 환경적인 요소를 계속해서 바꾸려고 집착해왔다. 바뀌지 않는 환경을 보면서 앞으로 무의미한 군생활이 계속될 거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었다.


 하지만, 군 생활은 무의미하지 않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바뀌지 않는 한 개의 큰 상황 안에서 바꿀 수 있는 여러 작은 순간들이 존재하는 환경이다. 물론 18개월의 시간에서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군대에서 보내는 하루들을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는 기회들은 넘쳤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자기개발 지원금은 모두 책 구입에 사용했고, 부족한 책은 부대 도서관을 이용했다. 내가 책이라는 자기개발을 통해 얻은 성과는 바로 메타인지 능력 향상이다. 이 개념에 대해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다. 군대에 오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했던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뭘 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지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생각을 경험하고 스스로 질문하면서 노트에 내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이 습관이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점점 구체화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를 알아가는 것이 점점 명확해지고 쉬워지면서 재미가 생기고 더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뭘 알고 알지 못하는지 깨달으면서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나라는 사람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니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도 더 쉬워지고 연습도 하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견디면서 더 능력 있고 나은 사람이 되는 자기개발을 해야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 사람의 이름, 취향, 관심사, 그리고 싫어하는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나라는 자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가 뭘 알고 모르는지 구분할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이 꼭 필요하다. 그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이 세상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앞으로 전진해나가야 할 사람은 바로 본인이다. 앞으로 살아가야 될 날들이 몇십 년이나 남았는데 잘 알지도 못하고 싫어하는 사람과 살고 싶은가?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좋아하는 사람과 남은 인생을 같이하고 싶기 때문에 오늘도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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