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친절

#관계

by 또랑쎄


바쁜 회사 생활 속 요즘 나는 자리에서 이어폰을 꽂을 때가 잦다. 내 자리를 기준으로 복도 맞은편 팀장님 자리에서 사수가 깨지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이다. 각각 팀장으로서, 파트 리더로서의 첫해를 보내고 있는 그 둘은 전 회사에서부터 줄곧 함께 일하던 사이다. 서로의 사이가 제법 끈끈하고 오래되어 온지라 작년만 해도 그 둘은 끝까지 같이 갈 사이처럼 보였다.

그들보다 젊은 세대 중 나는 제법 그들과 친하게 지내왔었다. 담당 기능뿐 아니라 다양한 문제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고, 명쾌히 리드해 주셨던 현재 팀장님, 다양하고 넓은 기술 스택으로 기능 상관없이 도움을 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고민 상담도 해주던 현재 파트 리더이자 사수. 사회생활에 이미 오래 정착한 선배들로서, 또 나를 이끄는 상사로서 성과를 만드는 능력과 더 나아가 행실, 가치관 등의 방면에서도 나는 그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이런 마음이 들면서부터 나는 어느덧 회사에서의 나의 모습이 후에 그들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며칠 전 현재 사수이자 파트 리더와 야근을 하고 있었다. 사수는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한 엑셀을 펼쳐놓고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뭐 하시고 계세요?"
"내년 경영 예산. 해봤어야 알지 후"

며칠간 계속된 회의로 시간이 없었던지라 벼락치기 하듯 엑셀을 작성하고 있는 사수에게 팀장님이 퇴근하며 다가왔다.

"그거 내가 작성할게. 신경 쓰지 마"

다정히 말하는 팀장님의 말씀을 나도 들었다.

"팀장님이 작성하신다고 하셨잖아요. 늦었는데 퇴근하시죠"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팀장님 자리에 서있는 사수가 보였고, 팀장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하.. 진짜.. 아 됐어요. 그냥 내가 작성할게."

굳은 사수의 표정이 신경 쓰였던 와중에 점심 식사 후 커피를 기다리며 사수가 말했다.

"어제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고, 오늘은 쓰라고 닦달했다가 짜증 내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같이 지내온 시간만큼 서로가 서로의 사정도 잘 이해하고 있고, 그 둘이 팀장과 리더가 된 이상 그 누구보다 큰 시너지가 날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현실 속 둘은 비일비재한 저런 나날을 보내며 누구보다도 감정적으로 갈등이 깊은 상태가 되었다. 이는 안타깝게도 영영 해소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나는 과거에 팀장님이 이유는 모르게 갑작스러운 짜증을 냈던 한 번의 일이 문득 상기됐다. 진급한지 얼마 안 되었던 나는 그저 어안이 벙벙하여 내가 다른 것에서 심기를 건드렸겠거니 생각하고 지나갔었다. 과거의 기억이 뇌리를 스치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은 틀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원래 가지고 있던 성향 혹은 감정 표출이 그것을 눈치 안 보고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직책이나 위치에 이르렀을 때 더 잘 드러나는게 아닐런지.

그럼 그러한 성향을 거리낌 없이 표출할 대상은 누구일까.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보통 기본적인 규범 혹은 규칙을 타인에게 피해 가지 않는 선에서 지키고, 보이는 이미지 또한 신경 쓰며 행동한다. 이렇게 보이는 모습은 평가자에게는 실제 고과에 연관된 평가로, 동료들에게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나의 이미지로 적용된다. 어떠한 평가의 대상이 아니게 되는 환경, 특히나 친한 동료나 친구, 가족 앞에서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제어 없이 표출할 수 있지 않을까. 흔히 자식들이 지들 연인에게는 다정하면서 유독 엄마에게 짜증 내는 것 같이 말이다.

팀장님은 유독 사수에게만 짜증을 내시고 남들에게는 친절하다. 그 이유를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찾는건 불가능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처음 경험하는 직위에서 오는 여러 방면의 스트레스를 자연스레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고(참고로 팀장님은 미혼이다), 여태껏 오랜 기간 함께 사적인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던 사수에게 그 화살이 돌아간 것 아닐까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두 사람의 롤러코스터 같은 관계 곡선을 지켜보며, 나라는 인간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장이라는 곳에서의 모습이 개인의 진정한 모습과 동일한 측면으로 비교될 순 없다. 하지만 팀장님의 지금의 모습은 직장 상사, 한 집단의 리더의 모습을 떠나 일반적인 인간관계적 측면에서의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했다.

별로 친분이 있지 않은 사람과 업무적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아도 나는 금방 한숨이 나오며 진이 빠지곤 한다. 아무래도 대화 중 부정적인 느낌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그것을 티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솔직한 내 모습을 어느정도 감추며 친절한 '척'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드러난다"라고 했다. 되돌려 받을 게 있든 없든 누가 어떤 것을 가졌던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친절히 대하는 태도를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존엄과 가치의 기준으로 정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친절이란 아마도 겉으로 보여지는 태도라기 보단, 그 내면에서 진심어린 태도로 그 사람을 친절히 대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말에 따르면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 가치는 형편 없는 수준임이 분명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독 사수에게만 짜증 내는 팀장님과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과연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대를 솔직히 대하는 태도 그 뒤에는 그것을 받쳐줄 수 있는 안전장치 같은 것을 마련해야 한다. 서로를 믿고 응원하고 의지하는 힘으로 형성된 견고한 매트리스 같은 것이다. 내가 만약 일면식 없는 타 부서 사람에게 짜증을 내었다면, 상대는 그 고통을 마음에 받고 나를 흉볼 것이다. 하지만 나와의 매트리스가 꽤 두꺼운 동료에게 그랬다면 씁쓸할 수 있을지언정 이내 풀릴 것이다. 팀장님과 사수의 매트리스는 함께 지내온 시간만큼이나 두꺼웠었다. 그 얇기가 빠르게 닳고 닳아 없어졌다고 확신한 건 얼마 전 사수의 면담 후기를 들었을 때이다.

참다못한 사수는 팀장님과 면담을 했다. 이유 없는 짜증을 본인에게만 내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전달했고, 그 말을 듣고 나온 팀장님의 한마디가 화가 나면서도 허무했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잘못했네."

저 말에 내포된 의미와 여러 가지 감정은 추측만 할 뿐 정확히 알 순 없다. 제일 각별했던 사이에 있었던 명백한 부당 대우를 팀장님은 인정했을까. 설사 행동은 인정하더라도 이곳은 회사이다. 그게 잘못인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합리화 시킬 수 있는 팀장으로서의 '권위'가 존재하기에 정말 미안한 감정이 저 대답에 내포되었을지는 미지수이다.

지금 팀장님과 사수는 면담 이후로는 구두로 대화를 거의 하고 있지 않다. 누구보다 오래된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생생히 목격하고 있는 나는 큰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누구보다 비통한 건 본인들일 것이다. 소중한 나의 동료를 떠나보내지 않고 사는 것. 십 년, 이십 년 뒤에 나의 위치나 상황이 바뀌더라도 내 매트리스는 여전히 푹신하고 두텁게 깔려있기를. 또 하나의 중요하고도 쉽지 않은 과제를 나 자신에게 하나 더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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