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경보 발효중 △야외활동 자제 △물 자주 마시기 △야외활동을 자제하세요. △한낮 야외작업 자제 등 안전에 유의 바랍니다."
폭염 경보 문자가 계속 오는 뜨거운 토요일 오후였다. 기록적인 열대야와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한여름이다. 입추가 지난 지도 열흘이 넘었는데도 여름은 떠날 준비가 안되어 있다.
“이렇게 밖에 나가지 마라고 계속 문자 오는데...”
런쭈니파님이 폭염 경보 문자를 보며 이야기하자 우리는 같이 웃었다. 마치 겨뭍은개가 겨뭍은 개를 쳐다보며 웃듯, 서로의 도전에 대한 존경의 웃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아촌님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같이 오늘 열릴 제20회 썸머비치울트라마라톤 대회를 가는 중이었다. 이렇게 더운데,
나는 작년에 이어 이 대회에 또 나가게 되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작년에 나의 첫 울트라 마라톤으로 썸머비치울트라마라톤을 뛰었을 때 진짜 힘들었다. 비와 더위와 진흙과 싸워야 하는 싸움이었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작년에 마라톤 뛰면서 진짜 내가 죽음에 대비한 주변 정리를 너무 안 하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라고 한 줄 소감문을 간략하게 말하고 다녔다. 작년에 죽을 뻔했다면서, 진짜 죽을 것 같았는데, 왜? 또? 올해 또 왜 가는 것인가?
진정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인가? 이 정도 되면 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그냥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나는 그 고통을 모르는 6인과 함께 올해 이대회에 함께 가기로 했다. 나와 함께 4번째로 함께 울트라 대회에 참가하는 아촌님, 이번대회를 위해 옷 제작에 힘써준 쩐루니파님, 동네 달리기 친구이자 진주 장변 우용철 님, 마라톤과 달리기에 학술적인 도움을 주시고,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계시는 짱짱님, 이번마라톤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서영언니와 미래님 그리고 100Km는 아니지만 50Km를 함께 가실 파이어니아님 그리고 나 이렇게 8명이 이번 대회에 출전하기로 했다.
아무리 더운날이고, 우리는 울트라 마라톤을 앞두고 있어도 함께 차를 타고 가니 가는 길은 설레는 마음이 컸다. 차 안에서 서영언니가 에너지드링크와 아르기닌, 짱짱님께서 자일리톨 사탕, 아촌님이 물과 커피 등을 챙겨주셨다. 힘들고 고된 여정을 앞두고 다른 사람들부터 먼저 챙기는 사람들... 달리기 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 그래서 달리기를 못 끊는다.
서영언니가 선물해 준 비타민과 아르기닌
대회장인 수영요트경기장에 도착하고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근처에 있는 식당을 검색한 끝에 길 건너 김밥집으로 갔다. 김밥집인 이유는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맛집을 검색한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을 검색했다. 만둣국, 돈까스, 김밥, 떡볶이 등 여러 가지를 시켜서 먹기로 했다. 나는 사실 이때부터 긴장이 많이 되어서 밥맛이 없었다. 밥을 먹어야 더 잘 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먹기는 했지만 체하는 게 무서워 여러 번 의식적으로 꼭꼭 씹었다. 울트라는 먹은 만큼 간다고 하여 우리는 뭐라도 입에 넣으려고 애썼고, 이 이른 저녁식사가 큰 파장을 가지고 올 것이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식사 후에 2층에 있는 작은 카페로 갔다. 커피가 맛있다고 김밥집 사장님께 추천을 받았다. 작은 카페에 이미 마라톤복장을 한 두 분이 앉아 있었다. 우연히 같은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전쟁터에서 동향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운 일이다. 그래서 인사도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어 있다. 어디 사시는 누구신지? 정도는 기본값으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한다. 먼저 온 그분들은 우리 일행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했고, 우리는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금세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답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한 분은 모닝런이라고 자기소개를 하시며 유튜버라고 했다. 유튜브 영상을 찍어도 되겠냐고 해서 우리는 흔쾌히(아니 너무 좋아하며) 영상을 함께 찍었다.
카페에서 다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셨지만 나는 따뜻한 초코라테를 마셨다. 풀코스였다면 유제품은 안 먹었을 테지만 울트라니까 괜찮았다.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각자 가지고 간 장비들(페이핑 테이프와 가위)을 주섬주섬 꺼내어 테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되도록 많이 막 붙이고 보는 스타일이다. 안 붙이는 것보다는 낫겠지 라는 마음으로 대략 뚝딱뚝딱 붙인다. 테이핑을 할 때 내 성격을 들키기도 한다. 이번에는 우리 울트라 원정대중에서 가장 의학지식이 많고, 전문가인 런쭈니파님이 붙이는 것을 보고 흉내 내며 붙였다. 테이핑을 붙이고 나면 한 5분 정도는 자신감이 생긴다. 테이핑이 마치 근육이냐 되는 냥, 달리기 선수 같은 느낌이 든다.
좌: 요트경기장 안으로... 우:응원와주신 부피아님들과 몸을 풀고 있는 우리 울트라 원정대
다시 수영 요트 경기장으로 가서 배번을 받았다. 100K는 파란색 50K는 빨간색이다. 100K 배번을 달고 있으면, 50K 앞에서 우쭐해지는 것은 이때뿐이다.(주로에서는 처음부터 50K까지 50K가 부럽다.) 마라톤 옷을 갈아입고, 서영언니에게 바셀린도 빌려서 바셀린도 몸 구석에 발랐다. 이번에 우리 울트라 원정대는 단체대회복까지 준비했다. 누가 봐도 원팀의 느낌이 났다. 런쭈니파님의 정성이 많이 들어간 단체복이다. 준비물을 단단히 챙기고, 러닝조끼배낭을 메었다. 달릴 때 먹을 물도 챙기고,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으니 사진을 찍었다. 주로에서는 멀쩡한 모습을 남길 수 없을 거다. 부피아님(부산마피아)들과도 만나서 사진을 찍었다. 부피 아님들이 응원을 해주셨다. 해운대 마린시티, 피니쉬 라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심장이 날 뛰지 않는 상태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어색하다. 심박수가 올라가면 아무리 힘들어도 카메라를 보고 어색하지 않게 웃을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나한테 변태라 하겠지...
출발할 시간이 다되어 갔다. 6시가 넘어가니 거짓말처럼 날씨가 시원해지고 있었다. 오늘은 예감이 좋았다. 작년처럼 비도 오지 않고, 기분이 좋을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출발선에 여유롭게 섰다. 짱짱님, 아촌, 서영언니, 미래님, 우용철님, 런쭈니파님, 파이어니아님, 나 이렇게 8명은 곧 출발할 것이다. 마라톤 사회자는 유창한 말솜씨로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카운트타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