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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Sep 18. 2024

너무 한 밤과 낮의 울트라 마라톤(0~37K)

제20회 썸머비치울트라 마라톤 2024년 8월 17일~8월 18일

대회가 시작되고, 거의 뒤쪽에서 여유 있게 달리는 우리 앞으로 끝도 없이 사람들이 보였다. 5~6백여 명의 사람은 풀코스에 몇만 명에 비해서 세발의 피 같은 숫자라고 생각했는데, 앞에는 선두가 누구인지 안보일정도록 끝이 없는 행렬이었다. 민락교 아랫길로 내려가는 길에 사람들이 많이 밀렸다. 작년에도 많이 밀렸기 때문에 예상했었다. 사람이 밀리면 초반부터 쉬어갈 시간이 생기니까 쉴 수 있을 때 숨도 고르고 물도 마시고 이제는 요령이 늘었다. 오후 6시부터 선선한 바람이 있었지만 아직 오후 7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달리니 몸에서 열이나며 더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8명의 일행이 떨어지지 않도록 앞 뒤를 주시하면서 속도를 늦추었다. 작년에는 비가 와서 비 웅덩이를 피하느라 바닥만 보고 달렸는데(어차피 신발이 다 젖어서 바닥만 보고 달리는 것이 소용은 없었지만), 올해는 부산의 경치가 보였다. 아촌님과 나는 올해 경치가 보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우리가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성장한 것이지, 날씨가 좋아서 생기게 된 여유인지의 대해서 의문을 느끼며 달렸다.


 나는 좋은 컨디션과 여유로 행복해하며 달리고 있었지만 서영언니가 뛰다가 토하기도 하고 속이 안 좋다고 했다. 걱정이 되어 몇 번을 멈추어서 기다리거나 속도를 늦추었다. 분명히 이른 저녁으로 먹은 음식이 잘못된 것 같았다. 서영언니가 중간에 계속 토하고 힘들어했기 때문에 모두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달리면서도 발걸음이 무거웠다. 서영언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으면서도 우리가 걱정할까 봐 목소리만은 밝았다. 1CP까지라도 어떻게든 가보자는 생각에 달렸고, 1CP에 다다랐다. 1CP에는 작년과 똑같이 물과 방울토마토가 있었다. 나는 방울토마토를 한 줌 먹고 물도 마셨다. 1CP를 지나 조금 더 뛰어(100M 정도) 회동호 쪽으로 돌아 들어가자 약속한 대로 응원 오신 부피아(부산 마피아)님들이 있었다. 파란색 부피아 깃발을 흔들며 시원한 설레임 아이스크림을 손에 건네주며 응원해 주셨다. 우리는 호응에 보답하듯 소리를 지르며 달렸다. 설레임은 많이 녹아있어 한번에 쭉 마실 수 있었다. 달고 시원한 것이 목구멍으로 쑥 들어왔다. 불덩이 같은 정수리 허벅지 등에 갔다 대며 천천히 안 녹는 얼음을 억지로 녹여 먹는 것이 이 아이스크림의 묘미지만, 우리에게는 그렇게 즐길 여유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서영언니는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하나 먹고 가기로 했다. 응원온 부피아님들 중 한의사를 하신다는 분(성함을 모른다. )이 서영언니에게 수지침도 놓아주었다. 언니는 괜찮다며 갈 수 있다고 했고, 소화제도 하나 더 챙겼다고 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가야 할 길이기에 우리는 다시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회동호로 올라가는 길은 오르막길이 많고 비포장 길이며 엄청 어둡고 힘든 길이다. 해드렌턴이 없이는 산을 타기가 불가능한 수준의 어둠이다. 적막한 산길은 대회가 아니라면 절대 혼자 올 수 없는 곳이다. 혼자 온다면 중간에 주저앉아 울겠지. 벚꽃이 피면 엄청 아름다운 길이라고 했지만, 혼자 왔다면 귀곡산장으로 가는, 귀신을 곧 만날 수 있는 길이었다. '오르막은 무조건 걷는다.'라는 오르막 간별사(나?)의 방침에 따라 오르막을 걸으니 힘들진 않았다. 런쭈니파님과 아촌님은 마음이 급하지 한참을 앞쪽으로 뛰어가고 나와 용철님은 런쭈니파님과 아촌님을 따라잡기 위해서 여러 사람을 제치고 달렸다. 미래님, 짱짱님, 파이오니아님과 서영언니는 한참을 뒤쪽에서 오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식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쪽에서 큰 소리를 부르면 저쪽에서 대답을 했다. "짱짱님!! 평지에서는 뛰세요."라고 말했던 것 같다. 회동호를 올라가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짓이지...', '뭐 한다고 이렇게 개고생을 하고 있지?'라는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작년에 해본 나도 그런데, 올해 처음 뛰어본 사람들은 더 심하게 현타가 오는 회동호이다.

  회동호 산길을 꾸역꾸역 뛰어 2CP인 회동호 반환점까지 도착했다. 다른 참가자들보다 늦게 2CP에 도착한 우리는 꿀스틱 하나와 물만 먹을 수 있었다. 시원하고 달달하고 톡 쏘는 콜라를 마시면(나는 평소에는 콜라를 입에도 대지 않는다.) 울렁거리는 속도 쑥 내려가고 힘도 불끈 날까 싶었는데, 찌그러진 콜라 PT병만 바닥에서 굴러다니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대답할 뿐이었다. CP봉사자님께 왜 콜라가 없냐고 찡찡거리며 콜라 내놓으라고 바닥에 뒹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달랬다. 아무리 지금 너덜너덜한 상태여도 나는 40대 사회성을 갖춘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2CP에서 서영언니와 짱짱님, 파이어니어님과 미래님을 기다리기로 했다. 10분을 넘게 사람들이 CP를 향해 뛰어오는 것만 보며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니 우리 일행이 보였다. 우리 일행들은 물을 마시고 잠시 쉬었다. 서영언니는 전해질음료를 먹은 게 더 안 좋은 것 같다고 물을 1리터 넘게 마신 것 같다고 했다. 서영언니는 힘들어 보이고 지쳐 보이지만 멈출 수는 없는 것처럼 보였고, 아직까지 목소리는 또렷했다. 계속 가는 거다.  힘겨운 레이스는 계속되었다. 우리는 이제 산을 내려가는 일이 남았다. 회동호만 끝나면 제일 힘든 코스가 끝난 샘이었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은 조금 더 짧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이 점점 급해지고 있었다. 회동회를 내려오면서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가 잘 선택한 것이 있다면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60Km까지는 트레일러닝화를 신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 덕분인지 뛰는데 힘이 아직 많이 남은 느낌이 들었다. 노면이 고르지 못한 길에서는 접지력이 좋은 트레일러닝화가 발의 피곤도가 많이 낮았다.

혼자 가면 컴컴하고 무서운, 귀곡산장 가는 길 같은 그 산길을 걸으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농담이 오고 가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가파른 오르막길을 아주 신나고 즐거운 길로 기억하고 있다.

  회동호를 내려와서 다시 부피아님들이 응원했던 편의점 앞에 다다랐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부피아 트루먼님이 혼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봤던 얼굴이지만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얼파비(얼음+파워에이드+비타 500)라는 음료를 제조해서 먹었다. 얼파비는 색깔이 영롱하여 마치 칵테일이나 마법의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말로만 듣던 얼파비를 처음 먹어보았는데, 이온음료의 단맛과 시원함, 비타민음료의 상쾌한 기분이 함께 들어와 힘이 났다. 다시 또 시작할 수 있겠다. 이제는 한참 동안이나 계속 평지가 이어질 것이다. 힘든 산을 내려와서 평지를 뛰는 기분은 기분이 좋다. 앞으로 계속해서 나갈 수 있는 기분이 든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한 바퀴 돌 수 있겠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막막하긴 하여도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줄여나간다는 기분으로 가다 보면 언젠가는 끝이나 있겠지... 이 시간을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보면 결국엔 끝은 있으니까... 누군가 백 킬로미터를 어떻게 뛰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가다 보면 가진다고 말하고 싶다.

  평지를 내려와서부터는 뛰면서도 약간의 조바심이 나기도 했던 것 같다. 계속해서 뒤를 돌아봤다. 천천히 가보기로 하고 속도를 내지 않았지만 우리 일행이 보이지 않아 몇 번씩 멈춰서 기다리고 보이면 또 뛰고를 반복했다. 우리가 후미그룹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뛰는 근처에는 100Km 주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속도로 간다면 17시간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서영언니는 컨디션 저하로, 다리 통증을 호소하던 파이오니아님과 함께 결국 DNF를 했다. 함께 뛰어주기로 했는데, 같이 뛰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고, 아쉬운 순간이었다. 꼭 100Km 완주를 돕겠다고 했는데... 그렇지만 우리는 다시 낙동강 강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17시간 안에는 당연히 들어갈 거라고 완주는 너무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속도를 내서 달려 민락교 CP에 다다랐을 때 다들 지금 곧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들 못 움직 일정도로 너무 힘들다고 조금만 쉬어가자고 말했다. 제일 쌩쌩한 사람은 나와 미래님이었다. 아픈 곳도 없고, 힘도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저는 괜찮은데요."라고 말하니 고개도 들기 힘든 얼굴 몇 개와 혐오스러운 눈빛이 나를 쏘아보았다. '아... 눈치 챙겨야지.' 나의 장거리 변태력이 입증되는 순간인가? 사실 빨리 뛰어가고 싶어서 들썩들썩했다. '아... 눈치 챙겨야지.' 그래도 몇 분 후 나는 힘들어하는 우리 일행들을 재촉하여 계속해서 뛰었다. 또다시 힘들어도 뛰고, 너무 힘들면 걷고, 다시 뛰고 하다 보면 어느새 어떤 지점에 와있다.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그 힘든 시간을 버틸 뿐이다. 그냥 다음 CP를 향해서... 다음 42Km 지점의 CP에 있다는 깨송편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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