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회의가 잡혔다는 남편 A의 다급한 기상 알림에 서둘러 거실로 나와 아이의 어린이집 도시락을 싼다. 아침에 헤매지 않기 위해 분명 도시락 메뉴를 생각해두고 또 적어두기까지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생각해 둔 메뉴는 조합이 맞지 않는다. 내 의지로 기상한 것이 아니라서일까 아직도 머리가 멍 한 상태. 그런 나를 본 남편의 따끔한 지시에 따라 계란 찜기에 계란부터 올린다.
밤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둑한 이른 아침. 남편과 아이를 회사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도서관에 예약해 둔 책, 한국계 미국인 캐시 박 홍의 <Minor Feelings : An Asian American Reckoning>을 픽업하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 다양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한국인인 탓에 성장하며 살며 겪은 언어적, 외모적, 문화적 혼란스러움은 그녀를 글 쓰게 했다고. 목차를 먼저 훑었다. 손에 잡히는 페이지를 띄엄띄엄 읽는데 한국을 떠나와 아시아 태평양 어디에서 정착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글을 읽는 사이사이 자꾸 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트램 안에서 평소 같으면 핸드폰을 붙잡고 널려진 정보 중에 자극적인 기사를 파고들었을 내가 갑자기 글을 쓸 용기가 났다. 시행착오로 그치기 전에 브런치에 로그인부터 해 두었다.
조촐한 3인 가족. 부부와 아이가 한자리에 모이는 저녁식사 시간에 남편에게 온라인에 글을 써볼까 한다는 의중을 밝혔다. 주제가 뭐냐는 물음에 무엇인가를 지칭하는 it(그것)에 키워드를 넣어 나를 반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첫 it은 무엇이냐고 남편이 물었다. 대입하고 싶은 그것이 많았다. 한국인, 이방인, 배우자, 엄마, 딸, 운전면허를 따야 하는 나,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의 나, 회사를 다닐 때의 나, 저어기 아시아 태평양 어드메에서 살 때의 나... 과거, 현재, 미래 할 것 없이 그냥 순간의 나를 꺼내고 싶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엄마와 영어를 사용하는 아빠 사이에서 의도치 않게 북유럽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는, 남편 A를 똑 닮은 22개월 아기 a는 이제야 말문이 조금씩 트이고 있다. 한국어, 영어, 이곳 언어까지 다국어를 조합해야 하는 a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하나씩 하나씩 말을 뱉어내고 있는데 유독 '엄마'라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남편이 말을 꺼낸다.
A "a는 왜 '엄마'라고 하지 않지?"
나 "아니야, 가끔씩 엄마하고 부르던데? a야, '엄마-'해봐."
a "아빠!"
나 "엄-마-"
a "아빠!"
나 "... 아빠"
a "아빠!"
나 "할머니"
a "..."
나 "하라버지(할아버지)"
a "하부지~"
나 "엉클 uncle"
a "엉클"
나 "안티 auntie"
a "..."
이 영악한 놈. 이건 기록해야 한다.
나 "... 여보 핸드폰 좀 꺼내봐"
오늘은 내가 a를 재우기로 했다. 부자가 서로 죽고 못 사는 덕분에 분리 수면을 시작한 이후로 베드타임은 대부분 아빠와의 시간이었는데 멀지 않은 미래에 둘째를 계획한 터,a와 보다 더 많은 순간을 공유하기 위해 내가 기꺼이 재우기를 자처했다.
저녁 7시. 이른 시간이지만 아이의 양 볼에 있는 인디언 보조개는 깊게 패이며 여지없이 졸리다는 신호를 보낸다. a를 방으로 데려가 범퍼침대에 마주 보고 누운다. 팔베개를 해준다. a는 자신의 발을 높이 들어 주물러달라고 사인한다. 나는 한 손으로 양 발바닥과 발가락, 종아리를 번갈아가며 주물러준다. a의 촉촉하고 따끈해진 발이 내 배로 파고든다. 보드라운 아이의 숨 덕분에 나도 잠이 들었나 보다. 무언가 뾰족한 것이 내 옆구리를 찔러와 잠에서 깼다. 나는 옷의 상표인가 싶어 일어난 김에 겸사겸사 방에서 나갈 생각에 뾰족한 것을 떼어내려고 한다.물컹.
아뿔싸! a의 손이다. 낮에 어린이집에서 돌 고르기를 하고 논 탓에손톱이 찢어진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하필 지금 발견하다니. 아직 깊게 잠들지 못했을 텐데...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손을 떨어뜨리는 순간 a가 살짝 깨고 말았다.